한국일보>

이유식
논설고문

등록 : 2017.09.28 16:44
수정 : 2017.09.29 17:41

[이유식 칼럼] 북핵 비용과 협치의 비용

등록 : 2017.09.28 16:44
수정 : 2017.09.29 17:41

촛불 과신한 국정관리 여소야대 못 넘어

대북정책 등 사사건건 충돌 무력감만 키워

'청와대회동' 계기 소통 새 방식 찾아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가 2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만찬 회동을 마치고 '벙커'로 불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문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의 힘을 믿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 지나치고 위험수위로 치닫는다고 느낀 것은 대통령 후보 시절인 4월 말 부산역 유세에서 행한 연설을 듣고서였다.

당시 그는 자신의 적폐 청산 및 개혁 약속이 여소야대 국회의 벽에 부닥쳐 좌절될 것이라는 지적을 반박하며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총동원하고 촛불 민심이 뒷받침하면 모든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법적 권한은 시행령 등 행정명령과 업무지시를 말한 것이고, 촛불 민심은 국정 지지율 등으로 표현된 '주권자 민주주의'를 뜻한 것임은 나중에 드러났다.

하지만 이 기대와 주장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탈원전ㆍ최저임금ㆍ미세먼지ㆍ국정교과서 이슈 등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 독자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사안이 많았고, 공약을 뒤엎은 내로남불 인사는 지지층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반면 쓴맛도 봤다.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의 힘겨운 처리는 서막이었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은 '촛불도 법과 제도 안에서만 빛난다'는 진실을 뚜렷이 보여 줬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촛불 소신을 쉽사리 접기 싫었던 것 같다. 그는 지난달 하순 취임 100일에 즈음한 국민인수위 대국민 보고회의에서 "이제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결과 우리 정치가 이렇게 낙후되고 낙오됐다고 생각한다"며 직접민주주의가 국민의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직접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구체적 사례로 촛불 시위와 댓글 달기, 권리당원 참여, 적극적 정책제안 등을 제시하고 "국민의 집단지성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즉각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정신을 무시한 포퓰리즘이자 파시즘적 발상"이라며 '어용 시민'을 양산해 집권을 이어 가겠다는 책략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한 정부라는 문 대통령의 자부심은 우리 머리 위로 '완전파괴' '수소탄' 등의 막말이 날아다니는 동안에도 꺾이지 않았다. 청와대가 최근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및 미국 순방 성과 평가 자료는 민망할 정도로 동어반복적 촛불혁명 칭송과 자찬으로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 위기와 빈곤 등 인류 공동의 도전에 맞선 촛불혁명, 사람중심 경제 등 문재인표 해법 제시’ '세계시민상 수상을 통한 촛불혁명이라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민주주의 홍보' '촛불혁명 의미가 대북정책 기조와 원칙에 어떻게 반영됐는지의 설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촛불이 무너진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뒤엎은 기폭제가 아니라 제자리에 돌려놓은 안전판이었다는 사실은 험난했던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동의 처리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여소야대의 벽을 뚫은 것은 촛불과 댓글이 아니라 설득과 간절함이었다는 얘기다. 그제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청와대 만찬회동이 성사되고 초당적 안보상황 대처에 공감하는 합의문이 도출된 과정 역시 촛불과 무관한 '역지사지의 정성과 양보'가 빚은 작품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대표가 빠진 반쪽 회동에서 나온 원론적 합의인데도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목소리를 낮추고 이른바 '협치의 틀'을 만들어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제재와 대화를 두 축으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왔다. 그러나 이 사안이 남북관계를 넘어 열강 사이의 거대 지정학적 게임으로 변질되고 '운전대론'도 허세에 그치면서 "한반도 문제인데도 우리에게 해결할 힘도 없는" 무력감과 함께 백가쟁명식 갈등과 분열만 키워 온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과 노력의 반이라도 안으로 돌려 우리의 자존과 명예를 지키는 의지와 능력을 강화하고 과시하는 데 쓸 필요가 있다. 다행히 이번 청와대 회동은 그 싹을 보여 줬다. 청와대와 여당 입장에서는 국회 관리가 더욱 엄중하게 다가오는 시기다. 여야의 정치셈법이 복잡한 탓에 협치보다 대치가 일상적이지만, 최근의 몇몇 사례를 차분히 복기하면 공생의 길을 못 찾을 것도 없다.

논설고문 justino57@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