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석 기자

등록 : 2018.06.14 04:40
수정 : 2018.06.14 09:39

김상조 1년, 갑질 척결엔 ‘잰걸음’ 재벌개혁ㆍ독과점 해소엔 ‘소걸음’

등록 : 2018.06.14 04:40
수정 : 2018.06.14 09:39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생협력 생태계 구축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J노믹스’(소득주도+공정경제+혁신성장) 중 공정경제 사령탑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무엇보다 ‘갑질’을 척결하는 데 앞장선 점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준 반면 재벌개혁에 대해선 평가를 유보했다. 독과점 해소 등 경쟁당국 본연의 역할에 좀 더 치중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을의 눈물’ 닦아줬다

“경쟁법은 경쟁을 보호할 뿐, 경쟁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다”는 그 동안 공정위 직원들에게 금과옥조였다. 때문에 하도급대금 미지급 등 사인(私人)간 분쟁이 많은 가맹ㆍ유통ㆍ하도급ㆍ대리점 등 4대 갑을 분야엔 개입을 가급적 꺼렸다. 공정위 내부에선 이러한 문제는 민사소송 등 사법 수단으로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ㆍ사회적 약자를 보호해달라는 것”이라며 이 같은 분위기를 쇄신했다. 공정위는 곧 바로 프랜차이즈 본사가 각종 식자재, 종이컵 등 원부자재를 필수품목으로 정해 가맹점 구매를 강제하고 ‘통행세 폭리’를 취하는 관행에 칼을 꺼내 들었다. 지난해 12월엔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의 핵심 기술을 탈취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배상하게 하는 하도급 대책도 발표했다. 이봉의 서울대 교수는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38년간 갑을 문제는 공정위의 법 집행 우선순위에서 항상 뒷전이었다”며 “김 위원장이 ‘자유로운 경쟁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착취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현장에서 실질적인 거래 질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경무 피자에땅가맹점주협회 부회장은 “2016년 9월 본사 갑질을 공정위에 신고했는데도 감감무소식”이라며 “공정위가 곧바로 결론을 내주지 않으면 점주는 본사의 압력을 버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 건설사 대표 A씨도 “구두로 추가공사를 지시한 후 정산 때 오리발을 내밀거나 단가를 후려치는 대기업 횡포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신동준 기자

평가 엇갈리는 재벌개혁

재벌개혁에 대해선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재벌 저격수’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채찍’ 대신 우선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을 취했다. 지난해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과 만난 뒤 올 5월에는 10대 그룹으로 소통의 보폭을 넓혔다. 대기업 조사를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을 신설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개선책을 내놓진 않았다. 과거처럼 경직적인 사전규제를 밀어붙이기보다 ‘일단 시간을 줄 테니 알아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관행 끊어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이 같은 접근방식에 대해 불만이 많은 상황이다. 김 위원장의 ‘친정’인 참여연대는 지난달 논평을 통해 “기업의 자발적 노력만으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도 “재벌개혁의 목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총수일가의 ‘황제경영’ 폐해를 막는 것인데, 1년간 진전된 게 하나도 없다”며 “제도개선 없이 단순 행정력을 강화하고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꾸로 재계에선 공정위가 기업을 쉴새 없이 옥죄고 있다며 볼멘소리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김 위원장이 임기 2년 차부터 재벌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한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공정위 고위 관료는 “공정위가 마련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7월 발표)에 일감 몰아주기ㆍ출자규제 강화 등 각종 재벌개혁 수단들이 포함될 것으로 안다”며 “어떤 수단이 개편안에 담길지,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독과점 해소 등 본연의 역할 소홀

공정위가 독과점 산업구조 해소,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가격ㆍ물량조절, 경쟁사 방해 등) 규제 등 시장의 경쟁 자체를 보호ㆍ촉진하는 본연의 업무에 좀 더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갑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산업구조가 계속 심화하고 이에 따라 중소기업들이 소수 대기업의 거래질서에 종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독과점을 해소하고 시장의 진입장벽을 허물어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 들어 이쪽 분야에 대한 실적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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