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압수수색 전 추가 파기 시도
내용과 배경에 궁금증 증폭
"본인에 불똥 튈라" 면피성 의도
정치권 회유ㆍ협박 따른 것일 수도
성완종(64ㆍ사망) 전 경남기업 회장의 최 측근들이 증거인멸 혐의로 잇따라 긴급체포되면서, 이들이 숨기려 한 내용과 그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체포된 박준호(49) 전 상무 등 경남기업 임직원들은 성 전 회장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검찰은 이들의 증거인멸 행위가 두 차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경남기업 본사를 압수수색한 이후다. 이들은 이틀 동안 폐쇄회로(CC)TV를 끈 채 각종 비밀 자료들을 차떼기로 빼돌렸다. 당시는 성 전 회장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검찰이 확보 못한 다른 증거들은 숨기겠다’는 동기가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의문이 강하게 드는 대목은 2차 증거인멸이다. 시점 상 성 전 회장 사망 이후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위해 검찰 특별수사팀이 출범한 직후이다. 수사팀이 2차 압수수색(15일)을 하기 사흘 전 박 전 상무 등의 지시 하에 대대적인 서류 파쇄 및 은닉 작업이 진행됐다. 당시 박 전 상무는 “필요하다면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혔지만 이는 결국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우선 이번 수사로 사법처리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성 전 회장의 ‘유지’(遺志)를 따르기 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이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리적으로 볼 때 성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과 관련해 적용할 수 있을 뿐, 자신의 형사처벌을 피하려는 목적일 땐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상무 등이 인멸한 증거는 현재로선 성 전 회장 또는 그 일가의 범행과 관련한 자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증거인멸이 ‘성완종 리스트’의 성격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마당발’인 성 전 회장은 금융권 등에도 금품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남긴 리스트는 정치인 8인에 한정돼 있다. 배신감을 안겨준 인사들에 대한 ‘보복 리스트’라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이번에 인멸한 증거들은 8인 이외 다른 인사들에 대한 로비 자료일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더구나 수사가 8인 이외로 확산되는 건 회사에도 유리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외부’의 회유나 협박에 따른 증거인멸일 수 있다. 리스트 8인은 물론, 이번 사건으로 궁지에 몰릴 수 있는 실세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인데, 박 전 상무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경남기업 측과 접촉한 정치권 인사들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류(증거인멸)가 본류(금품로비 의혹)가 되는 경우가 있고, 한 갈래로 모이는 경우도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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