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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北 아리랑 매스게임은 南의 입시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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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北 아리랑 매스게임은 南의 입시학원이다

입력
2017.08.1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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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 이상 인원이 동원되어 연출된 매스게임 '아리랑'. 저자들은 여기서 남한 입시생들의 운명을 읽어낸다. 비아북 제공
10만명 이상 인원이 동원되어 연출된 매스게임 '아리랑'. 저자들은 여기서 남한 입시생들의 운명을 읽어낸다. 비아북 제공

‘북한 대동강맥주가 남한 맥주보다 더 맛있다’는 발언을 보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로 주리를 틀어 마땅하지만 ‘안보 무능’ 문재인 정부에 무려 ‘해외언론 정책자문’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청와대에까지 침투한 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 대니얼 튜더. 그리고 로이터 서울 주재 특파원인 제임스 피어슨이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상에 대한 취재 내용을 함께 풀어 썼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영문판 원제는 ‘노스 코리아 컨피덴셜(North Korea Confidential)’. 저자들도 솔직히 인정하듯, 김정은과 그의 일당들을 북쪽에 이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2013년 장성택 숙청 당시 쏟아진 온갖 ‘궁정 암투 시나리오’를 접해온 우리에겐 엄청나게 ‘컨피덴셜’한 내용은 없다. 다만 ‘김정은 체제’에 대해 ‘차분한’ 정리ㆍ요약 리포트라는 점에서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리용성'이 뛰어나다는 북한의 스마트폰 광고. 북한에도 당연히 스마트폰이 있다. 물론, 디지털 기기는 감시가 더 쉽기도 하다. 비아북 제공
'리용성'이 뛰어나다는 북한의 스마트폰 광고. 북한에도 당연히 스마트폰이 있다. 물론, 디지털 기기는 감시가 더 쉽기도 하다. 비아북 제공

저자들의 의도는 한국어판 제목으로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택한 데서 잘 드러난다. 맞다. 북한에도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산다. 3대 세습 김씨 왕조를 들여다보니 자본주의적 욕망이 들끓고 있더라는 얘기를 “빅토리아 시대 섹스처럼 모두가 다 그걸 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다소 진부한 영국식 농담에 버무려놓는다 한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정작 미국 땅에서도 '기름 먹는 하마'라 욕 먹는 허머 자동차를,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는 북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좋은 시선은 받지 못한다. 비아북 제공
정작 미국 땅에서도 '기름 먹는 하마'라 욕 먹는 허머 자동차를,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는 북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좋은 시선은 받지 못한다. 비아북 제공

다만 방점은, 이 일촉즉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그래도 김씨 왕조는 계속 된다”는 데 찍혀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자본주의 요소가 대거 유입됐고, 지금 이를 제거하려다간 혹독한 역풍이 분다는 사실을 북한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경제제재에도 고급제품이 넘쳐나고 시장거래도 확산되고 있다. 저자들은 그래서 ‘암(Dark)시장’ 대신 ‘회색(Grey)시장’이란 표현을 쓴다. 공화국 인민에게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음지의 것이 아니다.

동시에 북한이 이런 자세를 보이는 건, 정치적으로 통제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위직 인사권과 각급 정부기관에 대한 지도권한을 보유한, 300여명으로 구성된, 그 전모가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얘기다. 김정일은 조직지도부를 통해 김일성까지 제어했다.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한 조직지도부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다.

또 한가지는 인민의 태도다. 북한의 참상을 듣노라면 내일 당장 혁명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허나 비틀대면서도 지속되는 체제의 관성이란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저자들이 보기에 북한 주민들의 비교대상은 남한이라기보다 중국이다. 체제변화보다 개혁개방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얘기다.

책의 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저자들이 꼽는 남북의 공통점이다. 가령 10만 군중이 장엄한 카드섹션을 연출하는 지상 최대 매스게임 ‘아리랑’을 두고 이런 설명을 달아뒀다. “아리랑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데는 참가자의 오랜 야간 훈련과 노동이 요구된다. 이때 북한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수업 외 요구사항은 한국 입시학원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매스게임과 한국의 입시학원은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 안에서 공통의 목적과 공동체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서로 유사하다.” 미제를 박살내건, 4차 산업혁명을 박살내건 남북 아이들은 모두 제 한 몸 ‘총폭탄’이 되어야 할 운명이다.

“김치 맛있어요” “싸이 알아요” 같은 덕담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갈망하는 선진국의 시선이 이러하니, 민족 이질화 걱정일랑은 접어두는 게 좋겠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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