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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건축가의 집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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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건축가의 집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떨까

입력
2017.08.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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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합정동 응컴퍼니 2층의 ‘당신의 자리’.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2층과 옥상을 통째로 빌려준다. 응컴퍼니 제공
마포구 합정동 응컴퍼니 2층의 ‘당신의 자리’.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2층과 옥상을 통째로 빌려준다. 응컴퍼니 제공

여행의 기쁨 중 하나는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다. 낯섦에 거부감이 없다면, 이왕이면 건축가가 만든 공간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떨까. 서울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젊은 건축가들 중 에어비앤비를 통해 공간을 임대하는 곳들을 찾았다. 한옥에서 양옥까지, 방 하나에서 집 전체까지, 여행자들에겐 재미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

서촌의 150년 된 한옥, B.U.S 건축사무소

종로구 체부동 B.U.S 건축사무소. 150년 된 한옥을 리모델링해 사무실 겸 집으로 쓴다. 정면에서 왼쪽에 있는 방을 빌려준다. B.U.S 건축사무소 제공
종로구 체부동 B.U.S 건축사무소. 150년 된 한옥을 리모델링해 사무실 겸 집으로 쓴다. 정면에서 왼쪽에 있는 방을 빌려준다. B.U.S 건축사무소 제공

대학 동기인 박지현ㆍ조성학 건축가는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2014년 B.U.S 건축사무소를 설립하면서 뭉쳤다. 새 사무실을 찾던 이들은 서촌의 150년 된 한옥을 발견하고 각자의 집을 정리한 뒤 이곳을 사무실 겸 집으로 쓰기 시작했다.

빌려주는 곳은 두 건축가 중 조성학 소장의 방이다. 주중엔 본인이 살고 주말에 본가로 내려갈 때만 잠깐 내놓는다. 침대, 수납장, 간이 테이블이 놓인 한 뼘짜리 공간이지만 별도의 화장실도 딸려 있다. 손바닥만한 방을 굳이 주말과 주중으로 쪼개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서”다. “저희가 에어비앤비라는 서비스 자체를 좋아해요. 처음 보는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는 거잖아요. 어떤 나라에 갔을 때 현지 문화를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방법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에 가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말에 손님을 맞는 건 주로 박지현 소장이다. 손님의 대부분은 외국인으로, 건축사무소라는 데 흥미를 느껴 찾아온 이들도 꽤 있다. “(B.U.S의) 작업물을 보여달라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럼 자연스럽게 한국 건축에 대해 얘기하다가 맥주 한잔 하러 가기도 하죠.” 애초에 큰 수입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8개월간 운영했더니 적지 않은 돈이 모였다. 두 건축가는 부탄 여행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최고의 장점은 시간만 맞으면 옆의 사무실을 무료로 빌려 쓸 수 있다는 것. 건축 모형들에 둘러싸여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 1박에 4만5,000원. 연박만 가능하다.

B.U.S 건축사무소가 임대하는 방. 주중엔 건축가 중 한 명이 쓰고 주말에만 빌려준다. B.U.S 건축사무소
B.U.S 건축사무소가 임대하는 방. 주중엔 건축가 중 한 명이 쓰고 주말에만 빌려준다. B.U.S 건축사무소

시, 음악, 건축이 있는, 합정동 당신의 자리

마포구 합정동의 여행자 숙소 ‘당신의 자리’ 옥상 풍경. 못 쓰던 옥상을 깨끗하게 수리해 2층과 함께 빌려준다. 응컴퍼니 제공
마포구 합정동의 여행자 숙소 ‘당신의 자리’ 옥상 풍경. 못 쓰던 옥상을 깨끗하게 수리해 2층과 함께 빌려준다. 응컴퍼니 제공

당인리화력발전소가 보이는 마포구 합정동 주택가 골목에 ‘당신의 자리’가 있다. 1층의 응컴퍼니는 음반사 파스텔뮤직의 대표 이응민씨와 시인 오은, 건축가 신종은씨가 만든 문화기획사다. “시〮음악〮건축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2층짜리 단독주택을 빌려 전면 리모델링했다. 신종은 건축가에 따르면 “주변 오래된 집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집”이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공동작업공간이었어요. 임대비를 어떻게 감당할까 고민하다가 2층을 여행객들에게 빌려 주기로 한 거죠. 원래 옥상을 못 쓰는 집이었는데, 옥상까지 수리해 2층과 함께 통째로 빌려드리고 있어요.”

‘당신의 자리’가 내세우는 것은 도심 속 독채다. 대여섯 명의 인원이 오붓하게 하루를 보내기 위해 굳이 가평이나 양평까지 나가지 않고 도심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건축가는 그들만의 하루를 위해 실내 계단을 없애고 외부로 계단을 냈다.

오래된 주택은 방 2개에 작은 정원이 딸린 깔끔한 여행자 숙소로 탈바꿈했다. 부엌에는 완전히 열어젖힐 수 있는 접이식 창문을 내, 고기를 구워 정원의 테이블로 바로 나를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비장의 무기로 생맥주 기계를 갖췄다. 대형 천막이 쳐진 옥상에선 아무것도 안 해도 괜히 들뜬다. 빈틈 없이 들어선 건물들을 내려다보며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손님이 없을 땐 응컴퍼니가 이곳에서 문화 행사를 연다. 7월 말엔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발행)의 출간기념 행사가 열렸다. 옥상 이름은 ‘당신의 별자리’. 시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이름이 넘쳐난다. 1박에 15만원, 금〮토는 20만원이다. 옥상에 심긴 고추〮가지〮블루베리〮토마토는 덤이다.

‘당신의 자리’ 2층의 주방 창문. 접이식 창문을 통해 주방에서 구운 고기를 정원으로 바로 나를 수 있게 했다. 응컴퍼니 제공
‘당신의 자리’ 2층의 주방 창문. 접이식 창문을 통해 주방에서 구운 고기를 정원으로 바로 나를 수 있게 했다. 응컴퍼니 제공

목동 골목 안 협소주택, 생활건축 사무소

서울 양천구 목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생활건축 건축사사무소. 젊은 건축가 네 명이 공동작업실 겸 집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생활건축 제공
서울 양천구 목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생활건축 건축사사무소. 젊은 건축가 네 명이 공동작업실 겸 집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생활건축 제공

양천구 목동 비탈진 주택가 골목에 하얀 건물 한 채가 비집고 섰다. 1층 생활건축 건축사사무소의 강홍구, 노준영, 정인섭, 홍성준 네 명의 건축가는 2014년 각자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 이곳에 있던 2층짜리 주택을 매입, 3층과 다락이 딸린 집으로 증축했다.

“같이 일할 작업실 하나 만들자”로 시작된 이야기는 월세의 벽에 부딪히며 결국 같이 살집을 짓는 일로 발전했다. “저희가 살려고 지은 집이지만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어요. 중간에 누가 결혼해 나갈 경우 언제든 빌려 주거나 팔 수 있도록요.”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집의 기준으로, 이들은 아파트를 잡았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2층, 방 두 개와 테라스를 갖춘 3층, 작은 방과 널찍한 테라스가 있는 다락층은 여느 집의 보편적인 구조를 따른다. 여기에 단독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미를 조금씩 더했다. 2층 방엔 창틀을 길게 빼 올라 앉거나 이불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다락층엔 특유의 비스듬한 지붕과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간이주방이 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2016년 여름부터 사무실 위층을 통째로 빌려 주기 시작했다. 1층을 뺀 총 면적이 서른 평이 넘어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소규모 기업 워크숍에 적합하다. 간혹 협소 주택을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이 찾기도 한다. “도심 속 협소 주택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체험장으로서의 용도도 고려했습니다. 여기서 하루 자 보고 자기에게 협소주택이 맞는지 아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거죠.” 주말엔 24만원, 주중 요금은 15만~17만원으로 요일별로 다르다.

생활건축 2층의 트윈룸. 누구나 편리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단독주택의 재미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생활건축 제공
생활건축 2층의 트윈룸. 누구나 편리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단독주택의 재미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생활건축 제공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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