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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신화된 허왕후, 그냥 둘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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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신화된 허왕후, 그냥 둘 수가 없었죠”

입력
2017.01.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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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부산외대 교수의 책

허왕후 신화 조목조목 비판

“아유타국은 종교적 상징일 뿐

인도선 힌두민족주의에 악용”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허왕후 신화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아무리 역사란 만들어지는 것이라 해도 너무 못난이 짓 같은 것들이 많다"고 비판했다. ⓒ 고정남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허왕후 신화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아무리 역사란 만들어지는 것이라 해도 너무 못난이 짓 같은 것들이 많다"고 비판했다. ⓒ 고정남

“다들 조심하라 그러데요. 문중 잘못 건드리면 큰일난다고. 허허허. 그런데 이게 인도의 극우적인 힌두민족주의로까지 연결되니까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17일 전화기 너머 이광수 부산외대 인도학부 교수의 목소리는 모래를 한 웅큼 삼킨 듯 했다. 이 교수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가 김수로왕과 결혼했다’는 허왕후 신화를 조목조목 비판한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를 최근 내놨다.

김해 김수로왕릉의 허왕후 영정 ⓒ고정남
김해 김수로왕릉의 허왕후 영정 ⓒ고정남

그의 논지를 압축하면 이렇다. 2인자의 운명이 늘 그렇듯, 김유신의 후손은 삼국통일 뒤 신라 집권층에서 점차 배제 당한다. 지금이 어려우면 옛날이 그립다. 가야계인 김유신과 그의 선조 김수로왕에 대한 신화화가 추진되는데, 당대는 불교의 시대니 저 멀리 인도에서 온 공주 캐릭터가 딱이다.

이후 불교사회인 고려시대에 삼국유사를 통해 이 신화가 지속되다 조선시대 중종시절 양천 허씨 가문이 허왕후를 떠받들어 족보에 편입함으로써 역사가 되어버렸다. 성리학 가부장 사회에서 모계인 허씨 성을 이어받으려니 허왕후의 아이들 중 2명이 허씨를 허락 받았다는 얘기가 만들어지고, 불교 전래자가 여자인 허왕후면 곤란하니 오빠 장유화상을 만들어내고, 실물 증거를 위해 허왕후릉도 만들어낸다. 190여쪽에 이르는 본문은 이 허왕후 신화를 한 겹씩 면밀하게 벗겨나간다.

책이 겨누는 비판의 대상은 전방위적이다. 이런 류의 역사라면 빠지지 않는 이덕일은 물론이거니와, 한양대 인류학과 김병모 교수, 동서교류사의 권위자 정수일, 구수한 입담으로 역사를 풀어내는 재야사학자 이이화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면 아유타국은 어딘가?

“인도 힌두 신앙에서 ‘아유디야’인데, 이건 비유하자면 구약의 예루살렘, 일종의 이상향이다. 성스러운 왕이 다스린다는 종교적 의미지 그게 어떤 특정 지역을 지목하는 건 아니다. 인도 문화 영향을 받은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심지어 일본의 기록에서도 아유디야, 혹은 그 비슷한 명칭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로 채색된 삼국유사에서 ‘허왕후가 아유타국에서 왔다’라는 건 단지 ‘신성한 곳에서 온 귀한 사람’이란 표현일 뿐이다.”

-어쩌다 국민 신화가 됐을까.

“1970년대 아동문학가가 먼저 썼고, 1980년대 한양대 김병모 교수가 이를 키웠다. 당시 한단고기 열풍 등이 불어 닥치면서 북으로 위대한 고조선이 있다면, 남으로는 인도로 통하는 해상통로가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다 최근 인도가 부상하면서 한국-인도 양국 인연을 말하려다 보니 괜스레 확대 재생산되는 측면이 있다.”

-이미 1990년대에 허왕후 신화는 허위라는 논문을 냈다 했다. 학계는 왜 가만있나.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가야사 전문가들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 와중에 ‘한단고기’ 운운하는 사이비역사학이 너무 많이 퍼졌다. 정치적 부풀림도 있었다. 가령 DJP연합을 떠올려보라. DJ와 JP 양측이 연결고리를 찾다 김해 김씨를 떠올렸고, 그래서 인도의 아유디야 후손이라는 사람들이 한국을 찾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금은 우리 정부가 인도에다 7~8억원을 들여 아유디야 성역화 사업까지 벌인다. 아유디야는 그냥 종교적 상징일 뿐인데 말이다.”

-책을 쓰기로 한 구체적 계기가 있나.

“2007년쯤 인도 쪽에서 초청이 있었다. 허왕후 연구 발표였다. 당신네들 주장 다 틀렸다고 발표했는데, 최근 들어 또 부르더라. 힌두민족주의 입장에서는 허왕후가 자민족의 해외진출 사례이고, 우리 쪽에서는 가야가 해상무역 강국이라는 증거라고, 서로가 자기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힌두민족주의는 무슬림을 강하게 탄압하는 등 억압적이다. 그래서 대중서를 써야겠다 생각했다.”

1999년 김종필 당시 총리가 총리 공관으로 초청한 인도 아유타 왕조의 후손들을 오찬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허왕후 신화는 한국, 인도 양쪽으로 정치적 편익을 위해 이용당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9년 김종필 당시 총리가 총리 공관으로 초청한 인도 아유타 왕조의 후손들을 오찬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허왕후 신화는 한국, 인도 양쪽으로 정치적 편익을 위해 이용당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중이나 김해시는 몹시 싫어할 것 같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중의 경우 김해 김씨의 한 어르신이 연구자료를 제공해주시기도 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두고 문중 자체가 너무 오버하니 그냥 둘 수가 없다 하시더라. 김해시가 싫어하긴 한다. 그런데 난 그 문제는 분리해서 보자는 쪽이다. 홍길동, 논개를 지역사업화하듯, 김해는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지역사업화할 수 있다. 다만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선은 명백히 지키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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