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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2만명 시대, 블랙 로펌에 우는 청년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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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2만명 시대, 블랙 로펌에 우는 청년 변호사들

입력
2017.06.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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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ㆍ개업하더라도 수임난에

‘재택 변호사’‘집사 변호사’ 내몰려

“일시 진통… 로스쿨 취지 살려야” 시각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서울 서초동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 30대 여성 변호사 A씨는 최근 사표를 냈다. 사건을 맡길 때 마다 큰 소리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라는 대표변호사 지시를 받고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 주말 없이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월급 150여 만 원을 받으며 의무 연수 기간 6개월을 간신히 채우고도 몇 개월 더 일한 후였다. A씨는 “법을 다루는 변호사들이 정작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변호사 2만명 시대’ 청년 변호사 구직난이 바닥 끝까지 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청년 변호사 노동력을 저가에 착취하는 악덕 법률회사 성행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변호사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취업 기피대상이라 해서 ‘블랙펌’이라 일컫는다. 올해 로스쿨을 졸업한 김모(28ㆍ변호사시험 6기) 변호사는 “구직 원서를 넣는 시즌인데 ‘의무연수 시켜주는 것만도 고마워하라’는 식의 회사가 적지 않다”며 “커뮤니티에 후기로 올라온 ‘경고 글’을 보고 요령껏 블랙펌을 피해 지원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시험 합격 후 로펌, 법률사무소 등에서 6개월 의무 연수를 거쳐야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매년 1,600명 안팎으로 신규 인력이 쏟아지는 가운데, 10대 로펌 취업이 확정돼 해당 로펌에서 연수를 받는 200~250명, 변협에서 연수를 받는 600명을 제외한 인원(800명)이 일부 악덕 로펌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모(32ㆍ변시 3회) 변호사는 “연수 기간이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 청년 변호사를 노리고 매년 채용 공고를 올리는 소형 로펌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연수 기간 동안 헐값에 일을 맡기고 내보낸 뒤 다음 해 또 새로운 수습 변호사를 채용하는 행태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박모(39ㆍ변시 4회) 변호사는 “일부 회사는 정식 채용해 월급을 주는 대신 ‘장당 얼마’씩의 서면 알바로 고용하기도 한다”며 “변협 연수를 받으면 ‘취업 실패자’라는 인식이 있어 부당 대우를 감수하고라도 로펌에서 연수를 받으려는 분위기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도 지난 3월 ‘실무수습’ 변호사를 모집하면서 보수 없이 실비 35만원만 지급한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청년 변호사의 열악한 처우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변협에서는 ‘블랙펌 리스트’ 마련 등 대응책을 내놓기 보다는 문제가 될 때마다 성명서를 발표하는 수준의 대처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연수를 거쳐 변호사 활동을 한다 해도 처지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0년 처음 1만 명(1만 263명)을 돌파해 지난 2015년 2만 531명에 육박하는 등 개업변호사 수가 폭증하고 있지만 1인당 월 평균 수임 건수는 1.69건(변협 조사)에 불과하다. 서초동 한 변호사(42ㆍ변시 2회)는 “의뢰인을 상담할 응접실 용도로 오피스텔 방을 빌린 뒤 여러 변호사가 공유하는 ‘재택 변호사’도 생겼다”며 “사건 수임이 힘들어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다는 체면 손상 때문에 변호사들끼리는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 게 예의라는 인식도 생겼다고 한다.

규모가 작은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취직했다가 대표변호사 지시로 구치소에서 피고인 시중을 드는 ‘집사 변호사’(▶관계기사)로 내몰리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 2월 변협이 접견권 남용으로 징계한 집사 변호사 10명 가운데 6명이 20~30대 변호사, 3명이 이를 지시한 대표 변호사였다

비단 로스쿨 졸업생만 아니라 사법연수원생도 설 자리가 좁아졌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46기 209명과 43~45기 25명 등 총 234명 중 군 입대 인원을 뺀 사법연수생의 취업률도 45%(86명ㆍ지난 1월 기준)에 그쳤다.

열악해지는 청년 변호사 처우와 관련해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변협은 로스쿨 입학 정원 축소나 변시 합격자 수를 줄이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지만, 로스쿨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2008년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로스쿨 제도의 초석을 놓은 호문혁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로스쿨 제도는 단순히 판검사, 변호사 진출 문턱을 낮추기 위한 게 아니다”라면서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법률 지식을 쌓아 사회 전반에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기본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수 급증과 함께 실제로 최근 공공기관과 지자체, 기업체에서 잇따라 정책과 사업, 국제거래에 법률 검토를 할 변호사를 채용하고 있는 게 한 사례다. “홈닥터처럼 ‘홈로이어’가 일상화 될 수 있다”며 청년변호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과도기를 거친 뒤 사법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면 자연스레 해소될 문제라는 것이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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