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혜정 기자

등록 : 2017.04.29 07:30
수정 : 2017.04.29 18:30

[인물 360˚] 이방카에게 트럼프는 진짜 ‘성평등주의자’다

등록 : 2017.04.29 07:30
수정 : 2017.04.29 18:30

[지난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던 G20 여성경제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방카 트럼프가 아버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여성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청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13초쯤 등장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표정이 압권이다. 유튜브 영상]

‘백악관 보좌관’ 이방카 트럼프(35)가 첫 국제 외교무대 데뷔에서 웃음거리가 됐다. 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여성경제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해 “아버지(트럼프 대통령)는 여성과 가족을 지지하고 그들의 번영을 돕는 챔피언”이라고 말했다가 청중들의 야유를 받은 것이다. 그를 초청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조차 이방카의 발언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회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을 언급하며 “그가 정말 여성 지위 향상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그 이후 드러난 이방카의 일방향적 행보였다. 이방카는 미동도 없이 “아버지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증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했다. 행사가 끝난 후엔 기자들에게 “익숙한 일이에요” 말하며 밝게 웃었다고 한다. 심지어 정상회의가 끝난 뒤엔 자신의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 메르켈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방카 트럼프가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크램 캡쳐

이방카 트럼프는 톡톡튀는 언행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미국 대선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의 수많은 망언과 그를 둘러싼 성추문에도 ‘아버지는 남녀평등주의자(페미니스트)다’란 신념엔 변함이 없다. 이런 이방카의 언행은 그의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들이든 딸이든 ‘승자’여야 내 자식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주니어, 장녀 이방카, 차남 에릭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들이 유년시절에 대해 똑같이 기억하는 게 있다. 바로 트럼프가 경쟁을 부추기는 ‘극성 아빠’였다는 점이다.

도전적인 사업가답게 부친인 트럼프는 자녀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고 항상 성과를 얻도록 강요했다. 10대 초반 세 자녀를 데리고 스키장에 갔던 트럼프는 아이들이 높은 슬로프에서 내려가길 두려워하자 스키 폴(막대)을 내리 치며 내려가길 강요했다고 한다. 이후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상하던 트럼프는 “이기기 위해서는 애들을 직접 때릴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家)‘의 자녀라면 공부든 운동이든 뭐 하나 빠짐없이 잘해야 했다. 딸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뿐만 아니다. “얻고 싶으면 행동하라”는 부친의 원칙 아래 미국 최고 금수저들은 자기 방도 직접 치우며 자랐다고 한다. 트럼프는 자녀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만 지원하고 용돈도 주지 않았다. 10대 시절 이방카가 미국 사립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에게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건 것도, 모델 일을 했던 것도 모두 용돈 마련을 위해서였다고 했다.

[1997년 모델활동 시절 이방카가 미스 틴 USA의 사회를 보고 있다. 유튜브 영상]

잘 자란 트럼프의 자녀들 가운데 이방카는 특히 유별났다. 아버지를 따라 세계적인 경영대인 펜실베니아대학의 와튼 스쿨을 졸업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일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와 동문이다.

집안의 후광도 든든했다. 트럼프 가문은 미국 와튼 스쿨에서도 유력한 기부자이다. 하지만 그가 형제들 가운데 아버지의 사업가 기질을 가장 많이 닮은 건 분명해 보인다. 고교 시절, 이방카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한 친구는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자다 일어나면 이방카는 이미 방에 없었다”며 “아침 일찍 안전모를 쓰고 아버지 회사의 건설현장을 둘러보러 간 것”이라고 회상했다.

결국 “아버지는 결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에요”라는 이방카의 말은 진심인 셈이다. 트럼프는 딸이건 아들이건 상관없이 ‘내편’은 똑같이 대했다. 이방카가 재러드 쿠슈너(36)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할 당시엔 “쿠슈너가 개종해야지 왜 네가 하냐”며 화를 낸 일화도 유명하다.

“남자든 여자든 똑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해요. 미국인들만요”

이방카의 패션ㆍ생활 브랜드인 ‘이방카트럼프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의 지향점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룬 당당한 직업 여성’이 되는 것이다. ‘트럼프기업’의 부사장이자 패션회사 대표이면서 동시에 세 아이의 엄마인 자신처럼 말이다.

‘여성혐오’ 발언을 툭하면 내뱉는 아버지 때문에 비난을 받곤 하지만, 사실 이방카는 이런 ‘당당한 워킹맘’ 이미지로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2015년 공화당 경선 TV 토론에서 트럼프의 성차별적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트럼프 저격수’로 불렸던 전 폭스뉴스 앵커 메긴 켈리 조차 이방카만은 “사업가의 일과 세 아이 육아를 훌륭히 해내고 있다”며 우호적으로 대할 정도다. 트럼프의 음담패설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그에게 표를 던진건 딸의 바른 이미지 덕분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이방카 트럼프가 폭스뉴스의 메긴 캘리 앵커와 트럼프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이렇게 ‘트럼프 행정부의 제정신(Reason of Trump Administration)’ 담당을 맡게 된 이방카는 아버지 정부의 기조와는 거리가 먼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성별동일임금제ㆍ유급출산휴가ㆍ기후변화방지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게 대표적이다. 활동도 꽤 적극적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을 방문해 “과학기술 분야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올해 중순 ‘일하는 여성’이란 책을 발간해 얻은 수익을 여성발전기금에 쓰기로 약속했다. 지난해 12월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앨 고어 전 부통령과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트럼프타워에 초대해 만나기도 했다.

이방카는 언제나 “일에서 남녀 능력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부친의 방침을 강조한다. 여성이 일을 더 잘할 경우, 남성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는 점에 미뤄볼 때 아버지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란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성별동일임금제를 ‘트럼프 정부’ 다운 정책이라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부친의 소신인 ‘능력주의’가 성별동일임금제의 기반이란 게 이방카의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중국에서 ‘이방카트럼프’사의 옷을 생산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주 60시간 일하고 7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비난이 쇄도하고 있지만, 이방카로선 ‘능력만큼’ 챙겨줬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이방카가 이런 저러한 구설에 오르던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조용히 성별동일임금을 보장하는 ‘공정임금 및 직장 안전 규정’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방카라도 해고할 수 있지”

타고난 금수저에, 지적이고, 심지어 외모까지 뛰어나 공감하기 어려운 ‘그사세’ 이방카의 페미니즘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이 누차 강조하는 것처럼, 이방카는 트럼프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오빠인 도널드 주니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방카는 아버지의 부드러운 면을 이끌어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전달할 줄 안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이방카가 함께 출연했던 TV쇼 ‘어프렌티스’의 PD는 “트럼프가 쇼에서 부적절한 말을 하려고 할 때면 이방카가 항상 제지했다”며 “아마도 그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수위 조절’ 담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서 수익을 내려 하는’ 트럼프가의 DNA가 두 사람 모두에게 흐르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단정한 목소리로 연신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 강조하는 이방카는 CNN과의 인터뷰 도중 트럼프와의 관계를 묻자 “사업적 관계는 물론 사적 관계도 좋다”며 사업을 우선 순위에 뒀다. 트럼프 지지 연설 장면이 담긴 사진을 이용해 자기 브랜드 옷을 홍보할 만큼, 사업 부분에선 적극적이다.

지난해 7월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후보자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 이방카 트럼프는 관련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자사 브랜드의 옷을 홍보했다. 트위터 캡쳐

물론 아버지는 한 수 위로 평가된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해고할 수 있다”며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일각에선 이방카가 ‘대통령 트럼프’의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 딸의 직위까지 거두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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