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안건조정 신청 무산 후 최후수단 필리버스터 카드 빼들어
본회의서 직권상정 되자마자 김광진 시작으로 줄줄이 발언 신청
與는 로텐더홀서 야당 규탄대회…여야 원내대표단 심야 긴급 간담회
테러방지법의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23일 본회의 직권상정과 52년 만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의 등장까지 불러왔다.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날 오후 1시30분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야당이 국회의장의 일방적 직권상정을 막을 방법은 이제 필리버스터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몇몇 의원들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인 데다 자칫 여론의 역풍이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원내대표단은 “테러방지법의 잘못된 부분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거듭 설득했고, 결국 의원 108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필리버스터 요구서를 제출했다.
앞서 정 의장은 이날 오전 9시쯤 국회의사당에 출근하면서 “(테러방지법이) 직권상정의 요건을 갖췄다고 본다”며 가능성을 내비친 뒤,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20분쯤 테러방지법의 법안 심사기간을 ‘오후 1시30분까지’로 정하면서 직권상정 절차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즉시 직권상정 요건을 갖추기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어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안을 상정했다. 이에 더민주 측은 안건조정을 신청하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안건조정이 신청된 법안은 여야 동수로 구성된 안건조정위원회로 넘겨져 최장 90일까지 계류된다. 하지만 정 의장이 지정한 심사기간을 넘겨 본회의 상정 요건을 갖추면서 더민주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위기에 몰린 더민주 원내지도부는 정 의장 집무실을 찾아 1시간 30분가량 직권상정에 대해 항의하며 필리버스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같은 시각 의총을 열어 “직권상정 될 테러방지법을 이날 본회의에서 사수해 반드시 처리하자”고 한 목소리로 결의를 다졌다. 의총이 끝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은 오후 3시쯤 본회의장에 입장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후 여야는 테러방지법 수정을 위한 추가협상을 놓고 정 의장 중재로 옥신각신하다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정 의장은 오후 7시쯤 본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정 의장이 모두 발언을 통해 테러방지법의 직권상정이 불가피했다는 설명과 함께 직권상정을 선언하자마자 김광진 더민주 의원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에 들어갔다. 김 의원을 포함해 은수미, 유승희, 최민희, 강기정 (이상 더민주), 문병호(국민의당), 박원석(정의당) 의원 등이 발언 신청을 했다.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새누리당 의원들은 오후 8시40분쯤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규탄 행사를 진행한 데 이어 자정까지 국회 인근에서 대기했다. 더민주 의원들은 상임위별로 돌아가면서 본회의장을 지켰다.
여야는 차례로 심야 기자간담회를 열어 장외 설전을 이어갔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26일 본회의에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려면 앞에 있는 테러방지법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새누리당이 법안의 독소 조항을 해소하지 않으면 테러방지법 처리도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국민 안전을 볼모로 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용납할 수 없다”며 “의장이 국가비상상황으로 판단해서 직권상정한 건데 이제 와서 재협상은 없다”고 맞섰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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