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하 기자

등록 : 2018.06.25 04:40

대타가 세계적 스타로... 꿈 같은 클래식 성공 무대

부정적 어감과 달리 실력 있다는 의미... 스타 도약 기회이기도

등록 : 2018.06.25 04:40

누군가를 대신해 그 자리에 서는 '대타'가 클래식계에서는 세계 무대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 필하모니 음악당에서는 한국 피아니스트 김선욱(30)의 독주회가 열렸다.이날 관객들은 김선욱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소나타 세 곡에 마음을 뺏겼다. 당초 예정된 만남은 아니었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거장 머레이 페라이어(71)가 무대에 서기로 돼 있었다. 페라이어는 건강 때문에 이날 연주가 불가능했고, 파리 필하모니 음악당은 연주회를 완전히 취소하는 대신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김선욱이 파리 살 플레옐에서 개최되는 ‘피아노 4개의 별’ 공연에 정기적으로 초청되는 등 현지 관객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누군가를 대신해 어떤 자리에 서는 ‘대타’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사람들이 선뜻 내켜 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클래식 공연에서는 대타는 또 다른 기회를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연주자에게는 한 계단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원래 무대에 오르려던 연주자만큼의 실력과 티켓파워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내포돼 있기도 하다.

김선욱은 14일에는 영국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 무대에 섰다. 이날 우연한 기회를 손에 쥔 사람은 성시연(42) 지휘자였다. 성 지휘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는 등 국내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지 오래지만, 영국의 대표 악단 필하모니아와는 첫 연주였다. 2017~2018 한영문화교류의해 마무리를 위해 마련된 이날 공연은 원래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장한나(36)가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었다. 장 지휘자의 건강 문제로 대신 무대에 오른 성 지휘자는 “런던에서 그의 연주를 곧 다시 듣고 싶다”는 반응을 얻었다.

한 번 좋은 호흡을 맞춘 뒤에는 연주자와 지휘자가 또 다시 초청될 기회가 열린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데뷔를 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4)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회에 걸친 베를린필의 세계 순회 공연은 원래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협연할 예정이었다. 랑랑이 왼팔 건초염 증상으로 연주를 취소하면서, 조성진이 독일과 홍콩, 한국에서 4번 연주를 하게 됐다. 노승림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자의 호흡이 잘 맞으면 단골 협연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지휘자 사이먼 래틀, 베를린필과 좋은 호흡을 보여준 조성진에게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베를린필과 협연을 위해 원래 예정됐던 공연까지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적 악단과의 협연은 그 만큼 놓치기 어려운 기회라는 의미다. 국가마다 관객 특성이 다른 순회 공연에서는 더욱 그렇다. 베를린필의 중국 공연에서는 랑랑을 대신해 같은 중국 피아니스트인 유자 왕이 무대에 섰다.

오페라 공연에서도 대타 무대가 곧 기회가 될 때가 많다. 고음악계 거장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된 소프라노 임선혜의 1999년 유럽 데뷔 공연도 대타로 섰던 무대였다. 임세경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이 사랑하는 대타다. 출연 예정 소프라노에게 이상이 생기면 임세경에게 SOS를 보낸다. 대타 임세경이 ‘나비부인’ ‘토스카’ 등에서 기립박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테너 신상근(44)은 지난 4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맡아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식을 치렀다. 원래 로미오 역을 맡기로 한 미국 테너 찰스 카스트로노보의 건강 문제가 신상근에겐 행운이 됐다. 백인 남성이 독점해 온 로미오 역을 동양인이 맡기는 이례적이다.

국내 클래식계 한 관계자는 “기획자 입장에서는 대타 연주자와 지휘자를 선정하는 일이 소비자보호법까지 찾아봐야 하는 위험 관리와도 같다”며 “그만큼 신중한 결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노승림 전문위원은 “세계적 무대에서 대타란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최소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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