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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움직이는 잔잔한 그림책, 가끔 꺼내 읽어주세요”

입력
2016.12.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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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여름휴가'의 저자 안녕달 작가. 좋아하는 두 단어 안녕과 달을 조합한 예명을 쓴다. 얼굴공개는 "쑥스럽기도 하고 알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 같아" 하지 않는다. 창비 제공
'할머니의 여름휴가'의 저자 안녕달 작가. 좋아하는 두 단어 안녕과 달을 조합한 예명을 쓴다. 얼굴공개는 "쑥스럽기도 하고 알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 같아" 하지 않는다. 창비 제공

바다에 다녀온 손자 녀석이 고사리 손을 내민다. 예쁜 소라 하나. “바닷소리 들려드릴게요.” 녀석이 돌아간 뒤 강아지 메리와 할머니가 소라 속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꽃무늬 수영복, 느린 걸음, 옅지만 해맑은 미소, 보드라운 파도. 할머니의 휴가에 방해가 될까 책장을 넘기는 손길, 숨결마저 조심스러운 그림책이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쓰고 그린 안녕달 작가는 수상소식에 덜컥 걱정부터 드는 기색이다. “감사하긴 한데 이상하네요. 어릴 때부터 뭔가 어중간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 너무 많이 올라간 것 같아서 이제 망하는 일만 남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일러스트를 공부하며 틈틈이 그림책을 그리고 썼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사실 몇 년 전 그려놓고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낙방했던 책이다. 처음엔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 만으로도 기뻤다고 했다. “할머니가 주인공이고 너무 잔잔한 이야기책인데다, 이 이야기로 공모전에도 떨어지고, 출판사에서도 거절 당한 기억이 있고 해서요. 책을 내주시겠다는 게 그저 기쁘고 다른 기대치는 전혀 없었거든요.”

연신 몸을 낮췄지만 독자들은 첫 책 ‘수박 수영장’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안녕달 작가의 감성에 반응했다. 특장점이라 할 만한 상상력, 맑은 색감, 따뜻한 세계관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것. ‘수박 수영장’은 만만치 않은 신인작가 등장을 눈치 챈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1년 만에 3만부나 읽혔다. 초판 3,000부 소화도 쉽지 않은 게 최근 그림책의 현실이다. 두 번째 책 ‘할머니의 여름휴가’ 역시 6개월 만에 1만권 가량이나 읽혔다.

놀랄 만한 사건사고나 반전은 없지만 상상이 튀는 방향은 엉뚱하리만큼 태연하고, 할머니, 아이, 강아지를 지긋이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시종일관 전해온다. 안녕달 작가는 “평범한 할머니의 일상에 조금 특별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 특별함이 넘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몸이 편찮아서 멀리 갈 수 없는 할머니도 앞 마당에 가듯이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휴가를 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일이 별로 없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사는 게 거의 백수로 사는 것과 같았어요. 늦게 일어나 산책 겸 장을 보러 갔거든요. 낡은 동네여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는데 그때 본 삶의 템포가 좋았어요. 느릿느릿하게 걷고 화단을 가꾸고, 계단을 오르고. 그간 익숙하게 봐오던 것과 달라서 좋았고, 어떤 의미로 신선하고 신기한 존재로 느껴졌고요. 당시 제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동질감을 느낀 걸 수도 있어요.” 작가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할머니와 메리가 소라 안으로 들어가 갑자기 장면이 바다로 전환되는 부분’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한 장의 이미지에 임팩트를 꽝 하고 담는” 일에는 서툴렀다는 작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표현하기에 그림이 편해서” 그림책을 그린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를 제 멋대로 그리고 있을 뿐”인데 “(이제는) 책을 내고 싶으면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다는 작가의 소박한 바람은 “각 이야기들이 제 주인을 잘 찾아가는 것”이다. 내년에는 ‘왜요?’와 ‘메리’를 출간할 예정이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는 담백하니 태연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고 있다가도 가끔 꺼내 읽어주세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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