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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육아를 글로 배운 초보 엄마

입력
2016.11.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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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껏 육아서를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다 난관에 부딪칠 때면 아무래도 책을 먼저 찾았다. 처음 육아서를 집어 들었던 때는 아이가 7개월 무렵이었다. 젖을 물고 자는 습관을 고쳐야 했기에 아이가 혼자서 잠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면 교육’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와 관련한 책은 많았고 그중에서도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난 책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 수험생처럼 읽고 외우며 실전에 옮길 준비를 했다. 그런데 웬걸, 수면 교육 첫날 아이는 혼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책에서 설명한 방법을 다 실천해 보기도 전이었다. 마치 전쟁을 위해 군사를 훈련하고 온갖 병법을 고안해 두었더니 싸우기도 전에 적이 항복을 외친 꼴이었다.

좀 더 절박한 심정으로 육아서를 읽었던 경우는 아이가 이상행동을 보일 때였다. 아들이 배변훈련 시기와 맞물려 어린이집에서 자꾸 친구들을 물기 시작했다. 매일 하원 할 때면 난감해하는 선생님께 사과하고, 이 자국이 선명히 난 친구와 그의 부모님께 사과하는 일을 2주도 넘게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책을 펼쳤지만 육아서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탓이니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되며 끝까지 부드럽게 타이르라는 책이 있는 반면, 단호하고 엄하게 혼을 내야 하며 강도 높은 훈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도 있었다. 나는 난감했다. 그러니까 혼을 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책을 봐도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웠다.

나와 같은 초보 엄마들이 답답한 심정으로 찾는 육아서에는 안타깝게도 엄마의 고민을 속 시원히 해결해줄 내용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책 속 세상의 이야기일 뿐 현실과 괴리가 크다. 게다가 육아에 관한 실용서는 번역서가 많아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책에서 나온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고 각기 다른 아이들의 특성을 무시한 채 보편적인 잣대를 들이밀거나, 틀에 맞춰 아이를 키우려 했다가는 엄마만 힘들어지기 일쑤다. 물론 많은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골라낸 후 취사선택하여 적용한다면 의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책 한 권 완독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아서 많은 책을 읽고 비교 분석할 여력은 없다.

또한 육아서를 읽다 보면 어깨의 짐이 덜어지기는커녕 부담만 가중될 때도 많다. 책 속의 완벽한 엄마들을 대하면 움츠러들기도 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은 엄마,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엄마라고 넌지시 말하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쓰리다. 가뜩이나 쉽게 자책의 늪에 빠지는 엄마에게 육아서는 때때로 참 가혹하다.

2주 넘게 다른 친구들을 물고 다녔던 아들의 행동을 바로 잡아준 이는 다름 아닌 경찰 아저씨였다. 도무지 방법을 몰라 침울해 있던 나는 아이가 유독 경찰 아저씨를 무서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사정을 설명하니 경찰관 아저씨가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다. 혹시나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아저씨는 아이를 앉혀 놓고 물면 안 되는 이유, 친구들을 물면 어떻게 되는지를 지나치게 강하지도 또 약하지도 않게 알려주셨다. 아저씨가 무서워서인지 아이는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새겨듣는 모양새였다. 놀랍게도 다음날부터 아이는 친구를 물지 않았다. 공격적인 행동을 하기는 해도 예전처럼 물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2주 정도 지나자 서서히 사라졌다. 경찰관의 도움으로 육아의 난관을 헤쳐 나온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백 권의 책보다 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더 힘을 갖는 모습을 보며 육아는 글로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되는 분야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난관에 부딪힐 때면 책을 찾는다. 하지만 어느새 초보 엄마에서 벗어났는지 책 속 글에 예전만큼 휘둘리지는 않는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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