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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끝이 안 보이는 정태수 최순영 탈세 추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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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끝이 안 보이는 정태수 최순영 탈세 추징

입력
2015.11.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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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세청이 5억원 이상의 국세를 1년 이상 내지 않은 ‘고액 상습 체납자’ 명단을 지난 25일 공개했는데요. 이날 공개된 사람은 모두 2,216명으로, 이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3조7,832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 명당 평균으로 따지면 17억원이나 되는 돈입니다. (▶관련기사 보기)

국세청에서는 올해뿐 아니라 2004년부터 매년 고액 상습 체납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취지는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세금 납부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고, 이들이 숨겨 놓은 재산에 대한 신고를 유도하겠다는 건데요. 이들의 은닉 재산을 신고하면 ‘은닉재산 신고포상금 제도’에 따라서 최고 20억원까지 지급이 된다고 합니다. 올해에만 245건의 신고가 들어와서 4억7,5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이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2004년부터 공개돼 있는 명단에는 어떤 사람들이 포함돼 있을까요? 세금을 다 내는 건 고사하고, 30%도 내지 않은 채 ‘배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요. 밀린 세금의 30% 이상을 낸다면 공개된 명단에서 이름은 지울 수가 있습니다. 일단 2004년부터 차곡차곡 쌓인 명단에는 모두 1만8,000명의 이름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인사’의 이름도 여럿 눈에 띕니다.

먼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입니다. 체납액이 무려 2,225억2,700만원이나 되는데요. 2004년 첫 명단 공개 때부터 부동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정 전 회장하면 ‘정태수 리스트’가 먼저 떠오르죠.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4월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재계 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냈고, 5조7,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실대출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는데요. 건국 이후 최대의 금융 부정 사건으로 여전히 기록이 될 정도니, 당시의 충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능할 겁니다. 정 전 회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금을 내지 않고 10년 넘게 버티는 정 전 회장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지난 2007년 자신이 설립한 강릉영동대학교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법원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출국 했고, 정부가 카자흐스탄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면서 ‘정 회장이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정부의 요청에 정 회장이 옆 나라인 키르기스스탄으로 도주해 ‘정수’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했다는 정도가 서류상 확인되는 마지막 행보입니다.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확인된 얘기는 아닙니다.

정 전 회장에 대해 세금을 추징하려는 국세청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미등기로 남은 정 전 회장의 땅으로 알려진 서울 은마아파트 내 토지를 압류했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등 성과는 미비하기만 합니다.

명단에는 정보근 전 한보철강공업 대표도 있습니다. 644억6,700만원의 체납자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바로 정태수 전 회장의 셋째 아들입니다. 정씨는 최근에도 언론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지난 9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1997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출국금지를 풀어달라’며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를 했죠. 당시 정씨는 “세무 당국이 모두 재산을 압류해 더 이상 재산이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여러 정황을 볼 때 정씨가 한보그룹 부도 이후 재산을 숨겨놨을 가능성이 있고, 이를 외국으로 옮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씨의 요청을 단칼에 잘랐습니다. “정씨는 18년 동안 세금 770만원만 냈을 뿐”이라는 것도 재판부가 꼽은 출국금지 처분의 필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정 전 회장의 넷째 아들인 정한근 전 한보그룹 부회장도 293억8,8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져 있는데요. 계산해보니 이들 정태수 3부자가 내지 않은 세금만 3,000억원이 넘는군요.

▦주요 고액 상습 체납자

<자료=국세청>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도 570억원 체납자로 명단에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알려진 2조원대 불법 다단계 판매 사기범이죠. 2007년 1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인물인데요. 주씨는 현재도 중국에 투자한 합작회사를 옥중 경영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는 주씨가 감춘 70억원의 해외 은닉 재산을 압류해 공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국세청뿐 아니라 서울시에도 200억원 가까이 지방세를 체납했다고 합니다.

‘룸살롱의 황제’로 악명을 떨친 이경백씨도 눈에 띕니다. 2000년대 후반까지 ‘선릉역 룸살롱’의 대명사로 불린 ‘룰루랄라’를 운영한 인물인데요. 서울 강남 일대에 북창동식 유흥주점을 확산시키면서 한 때는 서울에서만 13~17곳의 룸살롱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한 해 매출만 1,000억원에 달했다고 알려졌는데요. 하지만 2010년 42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미성년자를 고용해 룸살롱 내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한 혐의로 구속이 된 것을 시작으로, 수 차례 여러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가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씨의 체납액은 120억7,8000만원입니다.

이 밖에도 2011년 저축은행 구명 로비 의혹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회장(350억9,700만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의 외손자인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714억8,600만원),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1,073억1,600만원)도 고액 상습 체납자로서 명단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태수 전 회장 등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수백억원씩 세금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돈이 없다고 버티는 사람에게 징세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재산을 찾고, 압류하고, 징수하는’ 정도로 제한적입니다. 꽁꽁 숨겨놨으니 찾는 일이 그만큼 힘들 일이겠죠.

국세청은 매년 체납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들의 재산은닉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수색 등 현장활동을 강화해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납세자가 존경 받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얘기도 잊지 않고 있죠. 내야 할 사람은 내지 않고, 찾아야 할 사람은 별 성과가 없는 게 지금 상황입니다. 이들과 국세청의 ‘숨기고 찾아내는’ 숨바꼭질은 언제쯤 마무리될까요.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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