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

등록 : 2017.11.15 14:36
수정 : 2017.11.15 14:37

[기고] 불공정한 거래, 비정상적 공사비

등록 : 2017.11.15 14:36
수정 : 2017.11.15 14:37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적폐청산’이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전반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사전적 의미로 ‘적폐(積幣)’란 오랫동안 쌓인 부당한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는 점에서 인적 청산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제도와 관습을 일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적폐청산이 될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건설공사 불공정 관행 개선의 문제와 함께 최근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공공건설 공사비 정상화’ 주장은 건설산업 현장의 적폐청산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 발주기관들은 공사발주 전 단계에서 정확한 설계와 적정한 공사비 산정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예산에 맞춘 공사원가 산정과 저가경쟁을 유도해 많은 리스크를 시공사에 전가했다. 또 계약 체결 후 부실설계를 수정ㆍ보완하기 위한 설계변경, 공기연장 등에 따른 추가비용 보전을 회피하면서 모든 것이 건설업체의 잘못인 것처럼 호도해 온 게 사실이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공공 발주물량이 많았던 시절에는 해당공사의 적자를 후속공사 수주를 통해 메울 수도 있었기에 공사비 부당책정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처럼 공공건설투자 감소로 공사 발주물량이 줄어 공사 한 건 수주에 급급한 업체들로서는 이제 인내도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사이 영업이익률이 10분의 1수준으로 대폭 줄었고, 공공공사만을 수행하는 업체의 약 30% 이상이 매년 적자를 보고 있다. 또 공공공사에 의존하는 토목업체의 경우 2005년 전체 4,145개사 가운데 약 40%에 육박하는 1,621개사가 폐업, 올 7월 현재 불과 2,524개사만 남아 있는 현실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우리 건설업체들의 슬픈 초상이 아니겠는가.

시대는 변하고 있다. 불공정하고 부당한 공사발주 제도와 관행으로 점철된 건설산업의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조류 앞에서 건설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발주기관은 충실한 설계를 바탕으로 적정한 기준을 통해 정확한 공사원가 산정에 매진하여야 하며, 일단 산정된 설계금액에 대해서는 부당하고 자의적인 삭감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공사비 거품제거라는 이름 아래 지난 10여 년 간 진행된 품셈기준 하향과 표준시장단가(실적공사비) 적용에 따른 과도한 공사비 하락이 과연 적정한지, 그리고 17년 간 변함이 없는 적격심사기준 낙찰하한율과 최저가낙찰제를 대신해 도입된 종합심사낙찰제도의 저가입찰 유도장치 등 현행 입찰제도와 얼마나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사비 산정과 입찰제도의 복합적 문제점으로 인한 실질낙찰율 하락 및 실행 공사원가의 상승을 고려하면 최소 10% 이상 낙찰률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건설업체의 목소리를 정책당국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

아울러, 계약상대자의 책임 없는 공기연장에 따른 추가비용을 둘러싸고 발주기관마다 진행 중인 수십 건씩의 소송 등 분쟁을 해결하고, 방지하기 위한 관련 기준의 조속한 개정도 필요하다.

건설산업이 더 이상 부정의 온상으로 비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일에 걸맞은보상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공 건설공사비의 정상화가 건설산업의 정상화를 의미한다.

그래야 우리 건설인들도 제대로 된 시공으로 우수한 품질의 목적물을 완성해낼 수 있을 것이고, 하수급인과 근로자에 대해서도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고, 정해진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롭고 우수한 기술개발을 위한 혁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인 오늘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명사들의 고언은 우리 건설산업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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