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7.07.15 04:40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여성의 몸, 국가가 통제하나” 미국 휩쓰는 붉은 망토 행렬

등록 : 2017.07.15 04:40

<19>마거릿 애트우드와 ‘시녀 이야기’ 시위

#1

낙태규제 법안 반대하는 여성들

‘국가의 출산 도구’ 소설 빗대

시녀 복장 시위 전국으로 확산

#2

한국 정부도 낙태 처벌 강화 추진

지난해 검은 옷 항의 시위 열려

권위주의 정부들의 전형적 특징

#3

국제 명성 얻은 캐나다 최고 작가

트럼프 정부의 여성 권리 위협에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할 것”

지난 3월 21일, 미 텍사스주 상원 의회에 십 수 명의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붉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남이 얼굴을 볼 수 없고 본인도 양 옆을 볼 수 없게 만든 하얀 보닛을 쓴 채였다.

망토는 체형을 감추면서도 새빨간 색깔이 유혹적으로 시선을 끄는 기묘한 복장이었다.

텍사스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415호와 25호, 낙태수술을 제한하는 법안과 의사 재량에 따라 임신부에게 태아의 이상을 알리지 않아도 되는 법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는 현장이었다. 붉은 옷의 여자들은 침묵으로 항의를 대신했고, 지난 수십 년간 텍사스에서 통과된 낙태 제한의 역사를 기록한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를 오마주한 복장을 하고.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시녀 이야기'가 4월 미국에서 방영을 시작하면서 낙태 규제 법안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시녀 복장 시위가 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훌루 제공

미 전역으로 퍼지는 ‘시녀 이야기’ 시위

지난 4월 26일부터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에서 방송된 ‘시녀 이야기’ 드라마는 아마존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 3월, 쇼 홍보를 위해 하얀 가리개와 붉은 망토를 한 여성들의 거리행진이 있었다. 작품에서 ‘출산용으로만 관리되는 여성’인 ‘시녀’를 상징하는 복장이었다. 이후 이에 영감을 받은 ‘시녀 이야기 시위’는 텍사스를 시작으로 현재 미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6월 13일, 미 오하이오주의회 의사당에서는 낙태시술을 제한하는 법안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붉은 옷을 입고 침묵시위를 했고, 6월 2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도 같은 복장의 여성들이 낙태와 피임을 시술하는 의료기관에 지원을 끊는 법안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에서 가장 큰 건강관리 단체의 예산이 끊어지고, 2,20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의료혜택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위에도 불구하고 생식을 통제하는 법안은 계속 상정되고 통과되는 중이다.

‘시녀 이야기’는 캐나다 대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소설에서는 공해와 질병으로 출산율이 급감하자 기독교 원리주의자에 의한 정부가 세워진 뒤, 여자는 오직 임신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겨진다. 동성애자와 낙태시술 의사는 출산을 방해한 죄인으로 사형당하고, 임신이 가능한 여성은 자궁 이외의 모든 용도가 부정된 채 국가에 의해 사회지도층의 씨받이로 관리된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은 추방되어 독성 폐기물 처리장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죽어간다.

여성들이 이 기괴한 사회의 가치관을 애써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더욱 어이없는 결말에 이른다. 이 정권은 겨우 몇 십 년 안에 무너져 없어진다. 더해서 권력자들이 대규모 숙청과 자료폐기를 하는 바람에 이 시대의 역사는 모호해져 버렸고, 후대 사람들은 주인공이 남긴 기록의 진위마저도 의심한다.

훌루가 지난 3월, 드라마의 첫 예고편을 발표했을 때,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것이 새 대통령을 비판하려 만든 좌파들의 선동이라고 비난했다. 훌루와 애트우드는 한숨을 쉬며 이 소설이 30년도 더 전에 쓰인 작품이고, 드라마는 정권이 바뀌기 전부터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해야 했다.

현실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SF 소설은 기이하게도 모든 장면에서 기시감과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에 대해 애트우드는 설명한다. “소설을 쓸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역사상 인간이 이미 어딘가에서 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는 것이요.”

출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역사상 세계 곳곳에서 흔히 보여졌다. 지난해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잠코비광장에서 여성들이 정부의 낙태 전면 금지법안에 항의하며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4년 태어난 여성의 디스토피아

애트우드에 의하면 국가에 의한 여성과 출산의 통제는 지구의 모든 통제국가의 특징이다. 대규모 강간은 흔한 전쟁의 현상이고, 기를 수 없는 아이를 여자에게 강제로 임신하게 하거나 아이를 도둑질하는 일 또한 역사가 깊다. 출산율 급감과 전체주의, 극우주의의 확산은 현재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녀가 ‘시녀 이야기’를 집필한 것은 1984년, 베를린 장벽으로 둘러싸인 독일의 서베를린에서였다. 그녀의 마음에는 그 연도를 제목으로 하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이 있었다. 도시는 숨이 막혔고 이웃 중 누가 정보원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1938년에 태어나 어린 날을 2차 세계대전 속에서 보낸 애트우드는 세상이 앞으로만 전진하지 않으며, 히틀러 치하의 독일처럼 모든 분명한 것이 하룻밤 새에 사라질 수도 있고, 변화가 번개처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자라났다.

‘역사상 없었던 일은 넣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집필한 이 소설 속의 기독교원리주의 국가는 지금도 미국에 잔재가 남아 있는 17세기 청교도에 기반을 두었다. 집필을 하며 애트우드는 당시 매사추세츠주에 살았던 메리 웹스터라는 한 여인을 생각했다. 그녀는 마녀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밤새도록 목이 매달렸지만 아침이 되어 밧줄을 끊을 때까지 살아 있었고, 이후 14년을 더 살았다. 애트우드는 그녀가 자신의 선조라 생각한다. 그녀가 그날 죽었다면 오늘날 캐나다 최고의 작가 애트우드도, 그녀의 소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를 그녀에게 헌정했다.

이 소설은 아서 C. 클라크 상을 비롯한 유수의 상을 수상했고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90년에는 ‘양철북’의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오페라, 발레, 만화로 제작되었으며 지금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시위에 광범위하게 영감을 주고 있다.

'시녀 이야기'는 임신과 출산 능력이 있는 소수의 여성들은 시녀로 살면서 오직 출산 기능만 하도록 엄격한 국가의 통제와 관리를 받는다. 훌루 제공

캐나다 최고의 작가, 최초의 페미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명실 공히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다. ‘빨강머리 앤’의 루시 몽고메리 이후 캐나다에서 최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며, 캐나다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이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캐나다의 가장 유명한 수출품으로도 불리는 그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시인으로 등단한 그녀는 SF는 물론 역사소설, 논픽션, 평론, 아동문학, TV 스크립트, 오페라 대본을 썼고, 최근에는 그래픽노블 스토리도 썼다.

그녀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로도 평가받는다. 그녀의 첫 소설은 1969년에 쓴 페미니즘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The Edible Woman)’였다. 2세대 페미니즘(투표권 보장을 요구한 1세대 페미니즘 운동 이후, 여성의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두 번째 물결)이 막 태동하던 무렵이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쓴 뒤 무수한 독자로부터 ‘당신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종종 고전적인 모티브를 차용해 여성의 관점과 정체성을 그려낸다. ‘도둑 신부’에서 그녀는 그림 형제의 동화 ‘도둑 신랑’을 모티브로, 신데렐라, 라푼젤, 그레텔(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키는 세 여성과 마녀를 연상시키는 지니아의 삶을 통해 여성의 자아 찾기를 그려낸다. ‘페넬로피아드’에서는 ‘오딧세이아’ 신화를 여성의 관점으로, 오딧세이의 아내 페넬로페와 그 시녀들의 눈으로 재구성한다. 한편으로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고양이 눈’에서는, 여성 예술가가 그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즘으로 인식되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애트우드는 저명한 사회운동가로서, 캐나다 녹색당원, 국제사면위원회, 민권운동연합회 등 78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유수의 사회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작가협회의 회장이었고 현재는 문학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국제작가협회(PEN 인터내셔널)의 부회장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발명가에마저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애트우드는 책 홍보를 하러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지쳐 먼 곳의 팬에게 사인해줄 수 있는 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원격 장치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독자의 책에 서명할 수 있는 ‘롱펜’을 구상했고, 2004년 여러 기술자들과 함께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기억하고 기록하라

‘권위주의 정부는 늘 여성과 출산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다’는 애트우드의 말은 우리도 체감한 바 있다. 작년 9월 낙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표되어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섰고, 12월에는 행정자치부에서 전국 가임기 여성 숫자를 기록한 전국출산지도를 공개해 항의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미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올 1월 21일, 워싱턴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여성 행진(Woman's march)이 있었다. 1960~70년대 반 베트남전 시위 이후 미국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정치시위였다. 하지만 새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취임 즉시 레이건 정부 때 제정된 낙태 관련 단체 지원을 금지하는 ‘멕시코시티 정책’을 부활시켰고, 종교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존슨 수정헌법’의 파괴도 시도하고 있다.

애트우드는 미국의 새 정부 아래에서 시민의 자유와 함께 지난 수십 년 간 싸워 얻은 여성의 권리가 다시 위협받고 있고, 대중 속에 혐오와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이 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사람들은 기록하고 있어요. 지금 기록할 수 없는 사람들도 기억한 뒤 나중에 기록할 겁니다.”

‘시녀 이야기’로 미래를 예측했느냐는 질문에 애트우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설마, 조지 오웰이 예측했겠죠. 아니, 오웰은 예측하지 않았어요. ‘관찰’했지요.”

김보영·SF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Larry D. Moore 촬영

마거릿 앨리너 애트우드

1939년 11월 18일~. 캐나다의 대표 소설가이자 시인, 문학비평가, 사회 운동가. 곤충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날을 북부의 오지를 오가며 보냈다. 6세부터 연극과 시를 썼다. 55개 이상의 캐나다 상과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고 하버드대, 옥스포드대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인의 정체성을 비롯해 환경, 인권, 페미니즘의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교수를 역임했고, 국제사면위원회, 캐나다작가협회, 민권운동연합회, PEN 인터내셔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1987년에는 미 인본주의자협회에서 올해의 휴머니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시녀 이야기’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잇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소개된 책>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황금가지 발행

도둑신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민음사 발행

페넬로피아드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발행

고양이 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발행

눈먼 암살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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