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국법에서 자유법으로… NSA의 무차별 통신기록 수집 제한
9·11 이후 14년 만에 일대 전환점, 국민 자유권·정부 신뢰 회복 꾀해
영국 "정보수집 빈틈을 메우자"… IS 가담 자국민 600명으로 늘자
도·감청 범위 강화 법안 추진 "테러 불안에 통과 가능성 높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도ㆍ감청 기관을 보유한 미국과 영국이 테러 우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최근 국가의 정보수집 권한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법을 내놓고 있다. 이달 초 무차별적인 정보수집 행위를 제한하는 ‘자유법’(Freedom Act)을 내놓은 미국과 달리 영국은 오히려 “정보수집의 빈틈을 메우자”며 ‘수사권규율법’(Investigation Power Bill)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2년여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으로 일하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각국의 무차별 도ㆍ감청 실태를 폭로한 뒤 전세계 여론이 국가 정보수집 권한 확대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도 이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는 영국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美, 14년 만에 테러 대응 첫 전환
9ㆍ11테러 발생 불과 6주 만인 2001년 10월 26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반(反) 테러법인 ‘미국 애국법’(USA Patriot Act)에 서명했다. ‘미국의 단결과 강화를 위해 적절한 수단으로 테러 행위를 방지하는 것에 관한 법률’의 약자를 따 ‘애국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법안으로 국가안보국(NSA)은 국내외 불특정 다수의 통신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됐다. 미국 국민과 국제사회는 법안 통과로 불거질 파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테러 공포가 모든 사안을 둘러쌌던 당시에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로부터 14년이 지난 현재 테러 우려는 잦아들기는커녕 되레 확산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활동 범위는 주요 선진국에서 아프리카 소국까지 전 세계로 확장했고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주의 조직은 자신들 방식대로 하나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목표까지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9ㆍ11 테러 당시와는 다르게 미국은 정부 대신 통신회사가 관련 자료를 5년간 보관하고 NSA가 통신기록을 확보하려면 법원의 영장을 받도록 반테러 정책의 방향을 바꿔 국민의 자유권과 정부 신뢰 확대를 꾀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이 같은 움직임을 크게 환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법은 강력한 국가안보기구 건설 시대를 도래한 9ㆍ11 테러 이후 14년 만에 문화적 전환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이 기관의 무차별적 도ㆍ감청 실태를 폭로한 이후 나온 최초의 법제 정비”라며 반겼다.
英, 최고 수준 도ㆍ감청 확대 박차
반면 영국은 오랫동안 제기돼 온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당국의 도ㆍ감청 권한 확대를 밀어붙이는 추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지난달 27일 총리실의 ‘감청 강화 입법 추진’ 발표 이후 “새 입법이 통신정보와 관련한 법을 현대화할 것”이라며 힘을 실어 줬다. 영국의 권력기관 감시법원도 지난해 말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이 영국 도ㆍ감청 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영국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활동은 유럽인권 협정의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조항에 대한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영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도ㆍ감청 범위를 확대하려는 배경에는 최근 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영향도 있지만, 테러 조직 가담을 시도하는 자국민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15일 가디언은 영국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요크셔주 브래드포드 지역에 살던 30대 세 자매가 3∼15세의 자녀 9명을 데리고 사라졌다면서 시리아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가족 측 변호사에 따르면 세 자매의 남자 형제는 이미 시리아에서 IS 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3일 이라크에서 벌어진 IS의 연쇄 자살폭탄 공격에도 영국인 소년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고, 3월에는 시리아에 가려던 10대 청소년 3명이 터키에서 붙잡히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현재 IS에 가담해 활동하고 있는 자국인을 6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비판 목소리에도 전문가들 영국행
그러나 이미 도ㆍ감청 분야에서 최고 수준 국가로 알려진 영국이 그 기능을 강화하는 데 대한 우려가 적잖다. 영국 정부는 3년 임기로 반테러법과 관련해 공식 자문하는 ‘반테러법 독립 검토인’을 두는데, 현재 이를 역임하고 있는 데이미드 앤더슨마저도 11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수사권강화법안을 “반 민주적이고 불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힘든”것으로 평가했다. 앤더슨은 372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이 법안은 너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 정부에 엄청난 권한이 주어질 수 밖에 없다”며 “현재 각부 장관으로 제한돼 있는 감청 승인 권한을 사정당국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빅브라더 워치’도 최근 보고서를 내고 영국 경찰이 2012년부터 최근까지 73만여건의 전화 및 이메일 통신기록을 요구했다고 밝히며 “미국마저 불법화한 사안에 대해 영국은 거꾸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분마다 한 번 꼴로 통신기록을 요청한 셈인 경찰에 93% 비율로 접근이 허가됐다며 “시민의 통신기록에 접근하기 힘들어 당국에 감청 권한을 추가로 부여해야 한다는 최근의 정부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NSA가 3만1,000여개의 표적 단어를 활용하는 반면 GCHQ가 정한 표적 단어는 4만여개를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ㆍ안보 전문가들은 이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게 점치며 영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정보 분류 자문가로 활동한 한 전문가는 “통화 기록이나 문자메시지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SNS) 서비스 사용 인구가 급증하며 도ㆍ감청 기관이 처리해야 할 정보 또한 폭증했다”며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려는 영국의 추세를 보고 정보 처리 관련자들이 연구와 자문 등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영국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AFP에 밝혔다. 미국의 한 보안업체 임원도 “영국이 수사권확대를 들고 나온 시점에 미국이 도ㆍ감청 기능을 대폭 불법화 하면서 눈길이 영국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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