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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 지도자의 자질과 공사(公私)의 준별(峻別)

입력
2017.04.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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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전환기를 맞아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앞 시대에 형성된 국민의 가치관이다. 국민의 가치관이 새 시대의 지향과 과제 그리고 환경에 어울리면 나라가 번성하고 어긋나면 쇠망한다. 100여 년 전 일본과 한국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1824-1869)는 에도 막부 말기의 병학자(兵學者)로서 일본 육군 창시자였다. 그에게 어느 날 멀리서 여인이 찾아와 같은 방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두 사람의 잠자리 사이에 병풍을 치고 밤새 네덜란드어로 써진 군사학 책을 읽는 데 몰두했다. 애정이라는 사적인 일을 물리치고 군사학이라는 공적인 일에 전념한 것이다. 그는 메이지(明治)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직후 교토에서 반대파에 살해당했다. 일본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군사력을 강화해 세계 5대 제국으로 부상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그의 동상을 세워 공로를 기렸다.

이인영(李隣榮, 1867-1909)은 일제의 강요로 고종이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원수부 십삼도 총대장으로 추대된 의병장이었다. 1907년 11월 그는 1만 명의 십삼도의병 연합부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에서 서울공략작전을 도모했다. 그때 이인영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전선을 떠나 문경의 빈소로 돌아가 장례식을 치렀다. 의병들이 이인영에게 재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3년 동안 시묘(侍墓)한 후 권토중래(捲土重來)하겠다며 거절하다가 일본 헌병에 잡혀 순국했다. 의병이라는 공적인 일보다 효도라는 사적인 일을 우선한 셈이다. 이인영이 죽은 이듬해 대한제국도 멸망했다.

오무라 마스지로와 이인영은 당시 자국 국민의 가치관을 체현한 지도자였다. 일본의 무사와 한국의 양반은 모두 주자학의 이념을 정치의 기본으로 삼았지만, 전자는 공과 충을, 후자는 사와 효를 최상의 가치로 여겼다. 두 지도자의 처신을 조금 과장하면, 멸사봉공(滅私奉公)과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열강은 국민국가의 융성과 자국영토의 확장을 추구했다.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던 세상이었다. 이인영보다 오무라 마스지로의 처신이 천하대란을 헤쳐 나가는데 더 기여했음은 그 후 두 나라의 운명이 증명한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제국주의의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의 안전과 번영이 저절로 보장되는 세상도 아니다. 국민의 가치관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결정되는 것은 예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금 내우외환에 직면해 있다. 그런 판인데도 육군 공병부대 지휘관은 전방지역 지뢰제거작전에 투입할 장병을 선발하는 데 부모의 동의를 받았다. 부모가 반대하면 다시 절차(?)를 밟아 채웠다고 한다. 다른 보병부대는 병사가 다칠까 봐 아예 실전과 같은 훈련은 시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병사는 부모에게 병영생활을 고자질하고 부모는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전쟁이 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지휘관만이 그들을 어느 작전에 투입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충이라는 공적 영역에 효라는 사적 영역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지휘관이 이 따위로 공적 임무를 포기하고 사적 인정에 빠졌는데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이런 썩어빠진 군대를 질책하거나 바로잡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거꾸로 병사의 월급을 인상하겠다는 등 사탕발림만 늘어놓았다. 현직 대통령이 멸공봉사의 혐의로 탄핵을 당하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도 말이다.

무릇 나라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자질은 공과 사를 준엄하게 구분하고 멸사봉공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어떤 후보자는 공사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게 마치 자유 또는 민주인 것처럼 호도한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나라는 망한다.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국민의 여망을 짓밟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 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100여 년 전 일본과 한국의 고사(故事)까지 들먹일 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 남은 며칠 동안, 멸사봉공은 아닐지언정 선공후사(先公後私)라도 실천할 수 있는 후보자를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야겠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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