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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를 위한' 국정교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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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를 위한' 국정교과서였다

입력
2016.1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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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유네스코 등재 서술도

집필진 31명 우파ㆍ관변학자 일색

야권ㆍ시민사회 “친일ㆍ독재 미화”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역사 국정교과서가 지난해 11월 정부의 국정화 방침 확정 1년여 만에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균형을 내세웠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공(功)을 부각시켜 독재를 희석하는 등 내용도, 집필진도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학교 ‘역사 1ㆍ2’와 고등학교 ‘한국사’ 등 3종의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국민 담화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국정교과서)는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게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실 위주, 균형 서술이라는 명분은 사실상 친일과 독재, 그 중에서도 박정희 독재 정권의 성과를 부풀리거나 과오를 줄이는데 사용됐다. 박정희 시대는 ‘한국사’에 8페이지(262~269쪽)에 걸쳐 상세히 기술돼 있고 긍정적인 면이 부각됐다. “수출 위주 경제 정책과 중화학 공업, 과학기술 육성을 통해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고도성장 목표를 달성했다”는 서술이 대표적이다. 새마을 운동은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물로 등재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 정도다.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추진했고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자금은 농림수산업 개발과 포항제철 건설 등에 투입됐다”는 서술이나, 안보 위기가 닥쳐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는 내용이 새로 추가된 것도 박정희 정권 독재 정당화 의도라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집권기간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다른 정권은 이승만 2, 전두환 3, 노태우~김영삼 2, 김대중~박근혜 6페이지 정도다.

이런 기술은 현행 검정교과서가 성과보다 부작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자학사관을 교육 현장에 퍼뜨리고 있다는 정부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공과의 균형 있는 기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대신 독재 정권 미화라는 우경화로 치달았다는 게 시민사회 등의 시각이다.

이와 함께 1948년의 역사적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서 ‘북한 정권 수립’으로 바뀌고,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도발, 인권 문제 등에 대한 내용도 대폭 느는 등 남한 정통성도 강조됐다.

교육부 브리핑 직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4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교육부 브리핑 직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4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비밀에 부쳐졌던 집필진 31명의 면면도 이날 공개됐다. 대다수 역사학자들이 참여를 거부한 상황에서 우파 성향의 원로 학자와 관변 인사들이 대거 들어갔고, 현대사 집필진 7명 중에는 정통 역사학자가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역사학계, 교원단체 등은 즉각 날을 세웠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 14명은 이날 성명에서 “박정희 치적을 강조하는 ‘박근혜 교과서’ 이자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사를 축소시킨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규정했다. 460여개 교육시민단체로 꾸려진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국정교과서를 탄핵한다”고 성토했다.

정부는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장검토본은 전용 웹페이지(historytextbook.moe.go.kr)에 전자책(e-Book) 형태로 다음달 23일까지 공개된다. 의견을 내려면 본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고, 제출된 의견은 공개되지 않는다. 의견이 반영된 최종본은 내년 1월 말쯤 나온다. 정부는 다음달 23일 이후 국정교과서의 현장 적용 방안을 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대안으로 검토되던 국정과 검정교과서 혼용 방안조차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폐기 수순을 밟는 수밖에 없단 얘기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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