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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소송공화국… 중재로 비용ㆍ시간 아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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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소송공화국… 중재로 비용ㆍ시간 아끼세요”

입력
2017.04.1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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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대한중재인협회장

“분쟁 땐 무조건 ‘법대로 해!’

국민 8명 중 1명이 소송 제기

중재, 법원 판결 효력 가지면서

법보다 따뜻한 결과 도출 가능”

일흔이 넘은 올해 대한중재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은 "소송공화국 대한민국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에 '중재'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왕태석기자kingwang@hankookilbo.com
일흔이 넘은 올해 대한중재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은 "소송공화국 대한민국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에 '중재'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왕태석기자kingwang@hankookilbo.com

“옳고 그름이 명백한 일까지 중재하자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법적 공방보다 중재로 “우리 사회는 분쟁이 나면 무조건 ‘법대로 하자’며 소송으로 시비를 가리려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분쟁 해결에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 구조가 됐지요. 하지만 중재를 통해서라면 상당수 분쟁은 경제ㆍ시간적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올해부터 임기 2년의 제10대 대한중재인협회장을 맡은 이기수(71) 고려대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요즘 ‘중재 전도사’역할에 한창이다. 고려대 총장(2008년 2월~2011년 2월)을 끝으로 정년 퇴임하며 남은 생을 대한민국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힘쓰겠노라고 밝혔던 그는 새로운 도전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국내 상거래 분쟁 등에 중재제도를 뿌리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 회장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갈등과 대립이 점차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치유하는 측면에서도 필요한 게 중재”라고 말한다.

사단법인 대한중재인협회는 법조계, 실업계, 학계, 공인회계사, 변리사, 공공단체 및 기관의 전문가 등을 포함해 2,4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중재인은 별도의 자격시험이 없다. 다만 경력 5년 이상 변호사나 대학교수 등과 같이 각 분야에서 경력과 학력, 전문성 등을 인정 받은 이들 가운데 심의위원회 심사를 통해 자격을 부여한다. 이 회장은 1985년부터 중재인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2004~2006년 대한중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재는 법적인 의미로 분쟁을 법원 재판이 아닌 중재인의 판정으로 해결하는 제도다. 그 범위는 분쟁의 요인과 해결방안을 금전으로 환전할 수 있는 사건이면 된다. 주주총회 결의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은 중재 대상이 아니지만, 개인간 재물 손괴사건은 소송 말고도 중재가 가능한 식이다.

이 회장은 자신이 중재인 역할을 한 사건 중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인 1990년대 말 보석도매상과 소매상간 중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갑작스런 경제한파에 소매상이 도매상한테 구입한 보석 상당수를 소비자에게 팔지 못해 대금지불 약속을 어긴 사건이었죠. 만약 소송이었다면 이유야 어찌됐든 계약을 파기한 잘못으로 소매상은 죗값을 치르고도 자금압박에 시달렸을 겁니다. 하지만 중재 결과 소매상은 팔지 못한 보석을 도매상에 반납하고, 나머지 채무를 차차 갚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법보다 따뜻한 결과가 나온 거죠.”

중재인의 판정은 중재법에 따라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인정된다.

당사자 중 한 쪽이 중재를 일방적으로 도중에 중단하거나 이미 끝난 중재판정에 불만을 품고 다시 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다툴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 회장은 “당사자들이 직접 중재인을 선정하는 만큼 양측이 중재 내용에 승복하고 합의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양측이 중재과정 중 합의를 해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어 법원에서도 중재 합의 사항과 다르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히 “소송은 3심제로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중재는 단심제여서 이를 최소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해외 주요국들은 중재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이 회장에 따르면 미국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95%는 소송이 아닌 대체적 분쟁해결 방안(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으로 종결된다. 중재와 화해 등 ADR을 통해 소송 이전 단계에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다. 일본도 전체 분쟁의 3분의 1 정도만이 법원을 거친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은 ‘소송공화국’이다.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전체 법원이 처리한 소송사건 수는 약 636만 건으로, 전체 국민 8명 중 1명이 소송을 냈다. 이 회장은 “중재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은 국내에선 모든 분쟁의 98% 가량이 법원을 통해 처리된다”고 했다. 지난해 대한중재인협회 소속 회원들이 처리한 전체 중재 건수는 약 400건에 불과하다.

국내 중재 제도의 역사는 나름 깊다. 상거래 관련 중재 업무를 전담하는 대한상사중재원은 지난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일반인의 경우 상거래 계약시 ‘본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분쟁은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최종해결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회장은 “상사중재원을 거치면 수임료 감소 문제가 있다 보니 소송을 권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국내의 중재 제도 확산 미비에 변호사들의 소극적인 역할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중재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중재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오는 6월 시행된다. 법은 대한민국을 동북아시아 국제중재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법무부를 주무부처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 회장은 “급속히 변화하는 국제 사회에서 각종 법과 규제가 따라올 수 없는 분쟁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동북아 지역 중심에 위치해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를 잇는 아시아 중재제도의 허브로 성장할 잠재력이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구성원간 신뢰가 강할수록 사회적 비용은 절감하고 사회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만큼 소송이 아닌 중재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윈윈게임을 하는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옳고 그름이 명백한 일까지 중재하자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법적 공방보다 중재로 당장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이 생각보다 많은 만큼 이 일들을 잘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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