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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라를 만들어도 될까”

입력
2016.04.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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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

마틴 워델 지음ㆍ헬렌 옥슨버리 그림ㆍ임봉경 옮김

시공주니어 발행ㆍ50쪽 ㆍ7,500원

게으른 농부 대신 농장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오리. 결국 농부를 내쫓고 동물들의 이상사회를 구현한다. 시공주니어 제공
게으른 농부 대신 농장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오리. 결국 농부를 내쫓고 동물들의 이상사회를 구현한다. 시공주니어 제공

다양한 연령이 모여있는 SNS 가족친지 창에서 20대들 몇몇이 투덜댄다. ‘투표하러 나설 만한 지지자가 없다… 그래도 국민 된 의무라는 걸 지켜야 하는가… 과연 ‘투표를 위한 투표’가 옳은 일인가… 이모 내외가 지지하는 ‘그 분’의 이즈음 처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어른들 대부분이 한두 번은 진정성을 다해 답변하고, 두세 번은 익살스런 이모티콘으로 모호한 공감을 표하고는 지루하고 어수선한 이 선거철이 어서 끝나기만 바라며 묵묵부답 의기소침 비겁자로 일관하는 참이다. ‘우리가 나라를 만들면 안 돼요???’ 가장 어린 꼬맹이가 보낸 대성일갈에 뜨끔해 하면서.

와중에 날아든 ‘오스크마을을 비롯한(…)무소유ㆍ친환경ㆍ무계급 원리의 이상사회를 추구하고 실험하는 2,000여 개 공동체들이 계획공동체연합을 결성했다’는 소식(4월 6일자 한국일보)은 어떤 고귀한 정념의 판타지 이상으로 감동적이다. 당신은 어떤 가치와 원리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일하며 살고 싶은가?

일찌감치 학교를 벗어나 온갖 일터를 전전하며 시와 동화를 써온 탁월한 이야기꾼 마틴 워델의 글로, 훌륭한 그림책 만드는 일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헬렌 옥슨버리가 그림 그린 ‘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원제 ‘Farmer Duck“)의 결말은 그런 질문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순정한 대답이라 여겨진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먹고 자며 뒹구는 게으름뱅이 농부는 오리에게 온갖 농장 일과 가사 일을 떠넘기곤 시시때때 소리친다. “일은 잘 돼가나?” 그럴 때마다 오리는 (오리의 목소리로)외마디 대답을 한다. 밥상을 차려내면서 “꽥!”, 저보다 몇 배나 큰 젖소를 데려오면서 “꽥!”, 닭장에 닭들을 몰아넣으면서 “꽥!”, 땔감을 톱질하면서 “꽥!”, 설거지를 하면서 “꽥!”, 다림질을 하면서 “꽥!”, 사과를 따면서 “꽥!”, 달걀을 모으고 나르면서 “꽥!”. 하루는 지칠 대로 지친 오리가 퉁퉁 부은 다리를 뻗고 주저앉자, 이 친구를 사랑하는 농장의 동물들이 분노에 차서 회의를 연다. 오리가 그러듯, 달빛 아래 모여든 동물들도 인간의 말을 구사하지 않고 “음매!” “매애애!” “꼬꼬댁 꼬꼬!” 자기들 목소리로 제안하고 의결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이제 게으름뱅이 농부는 침대째 뒤집혀 바깥으로 내몰리고, 마당 너머 들판 너머 언덕 너머 멀리멀리 노여움에 찬 추격자들에게 내쫓겨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농장은 그들의 이상사회, 즉 모두 함께 신나게 살아가는 참다운 삶터가 된다. 헬렌 옥슨버리가 그려 보이는 이상 사회는 모든 동물들이 화창한 들판에서 밀짚을 나르고 쌓으며 일하고 있는 마지막 장면이다. 수레바퀴를 딛고 일을 지시하는 오리의 모습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앞 면지의 우중충 흐리고 어둑한 들판 풍경이 초록잎 무성한 나무들과 점점이 빨간 양귀비꽃 싱그러운 풍경으로 바뀐 것을 보면 의심을 버려도 좋을 듯하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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