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 두께 등 기준에 맞지 않고 완강기 밑에 에어컨 실외기 설치도
화재로 130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의정부 아파트의 방화문이 부실 시공돼 불길의 확산을 늦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피시간을 벌지 못한 주민들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완강기 아래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피난기구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14일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0일 처음 불이 난 대봉그린아파트의 1층을 뺀 2~10층 각층의 중앙 계단마다 설치된 방화문 9개의 규격이 건축법 기준에 맞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건물에는 1시간 이상 불꽃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화문(철판 두께 1.5mm 이상 등)이 시공돼야 하지만, 자동폐쇄장치(도어클로저)가 달려있지 않는 등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부 방화문이 열려있기도 했다고 소방당국은 전했다. 방화문은 열기와 불길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방법상으론 항상 닫혀있어야 한다. 경찰 역시 전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불길이 계단 등을 타고 상층부로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촬영한 화면이나 소방관들의 증언에서도 대봉그린아파트 계단을 타고 옥상 비상문으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피하던 주민들이 피난기구인 완강기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도 나왔다. 대봉그린아파트에는 3~10층 공용복도 한 쪽에 완강기 1대씩이 설치돼 있었으나 그 아래 에어컨 실외기를 두는 구조물을 만들어 사용을 어렵게 했다. 소방당국은 “완강기 사용법 등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었으나 설령 알았더라도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이날 시공사와 설계ㆍ감리 업체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건축주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소방점검과 준공검사 등과 관련해 공무원들의 과실이 있었는지도 따져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법령을 면밀히 따져 위반사항이 드러나면 건물주 등 관련자들을 입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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