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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앞둔 탄광촌에 배달된 연탄불 “2017년 그 겨울은 따듯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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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앞둔 탄광촌에 배달된 연탄불 “2017년 그 겨울은 따듯했네”

입력
2017.01.2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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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법률법진 임직원, 강원 연탄은행에 ‘사랑의 연탄’ 기증하고 직접 배달까지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와 함께 “퇴직 광부들을 위한 쉼터 조성하겠다”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회원들과 종합법률법진 임직원들이 함께 ‘산업재해환자를 위한 사랑의 연탄나눔’에 나서 산재 광부들의 설맞이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이번 행사에 크게 기여한 박용일 고문).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회원들과 종합법률법진 임직원들이 함께 ‘산업재해환자를 위한 사랑의 연탄나눔’에 나서 산재 광부들의 설맞이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이번 행사에 크게 기여한 박용일 고문).

산촌의 겨울은 평야지대 양지쪽보다 훨씬 빨리 찾아오고, 더 길고, 더 차갑다.

그곳에도 추위와 싸우는 이웃들이 산다. 얼음 계곡 사이로 밀려오는 북풍한설 찬바람이 외롭게 살아가는 노광부들의 가슴에 혹한의 냉기를 불어넣는 곳, 탄광도시의 대명사였던 강원도 태백시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으로 광산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시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매몰사고로 다친 허리, 조금이라도 펴 보세요”

그곳에 남아 “병든 할머니(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김수환씨(74. 소도동 소도2길). 탄광근로자들의 직업병이라는 진폐장해 13급 판정을 받은 퇴역광부다. 성장한 자녀들이 객지로 떠난 지 오래여서 노부부가 아픈 몸을 보듬으며 추운 겨울을 함께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따듯할 것 같다. 까치까치 설날에 대비해 ‘사랑의 연탄’ 300장이 지난해 12월말 도착해서다. 종합법률법진 임직원들이 연탄을 기증하고,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회장 황상덕) 회원들과 함께 연탄을 창고까지 직접 날라다준 덕분이다.

20여명의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어 연탄을 가져올 때 김수환씨도 함께 연탄을 나르고 싶었지만,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허리를 쓸 수 없기 때문.

“정말 고맙습니다. 다친 허리가 벌써 따듯해지는 것 같습니다”

김수환씨의 말이다. 그는 1964년부터 24년간 태백 광산에서 탄을 캤다. ‘평생 탄을 캘 것’ 같이 여겼던 탄광을 80년대 말 떠나야 했던 것은, 호흡기를 통해 흡입된 석탄가루로 폐가 굳어지고 호흡이 곤란해진다는 진폐증 때문만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지하 갱도가 무너져 내릴 때 석탄더미에 깔려 허리를 다쳤던 매몰사고 때문. 채탄공이었던 그가 막장에서 탄을 캐며 전진해 들어가는 순간… 사방에서 무너지는 석탄원석들이 산사태처럼 그를 덮쳤다.

다행히 갱도는 아래로 경사지여서 무너지는 탄 더미에 밀려 철판을 따라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매몰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는데, 그날 이후 허리를 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자체적인 척추골절 형성이 어려워 엉덩이뼈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허리를 구부릴 수 없는 장애의 몸으로 살고 있다.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와 종합법률법진의 연탄배달로 따듯한 설을 맞이하게 됐다고 고마워하는 남편 우정섭씨(85)와 부인 이순노미씨(76) 부부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와 종합법률법진의 연탄배달로 따듯한 설을 맞이하게 됐다고 고마워하는 남편 우정섭씨(85)와 부인 이순노미씨(76) 부부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도 ‘풍성한 설’ 감사

여성 광부츨신 이순노미씨(76. 황지동 바람부리길) 가정에도 ‘사랑의 연탄’이 배달됐다.

그녀는 20살에 채탄공이던 남편 우정섭씨(85)와 결혼했고, 21살 때부터 탄광 선탄공으로 일했다. 부부가 일자리를 찾아 경북 의성을 떠나 강원도 묵호를 거쳐 태백으로 온 것은 1962년. 벌써 5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연탄을 난방으로 사용해야 하는 영세민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장에서 근무한 남편은 다행히 탄광 직업병이 없지만, 부인 이씨는 2014년5월부터 시행 적용된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판정을 받은 상태다. 그 이전 진폐증 진단에서는 보상 대상이 아닌 진폐의증(진폐증 의심자) 판정을 받았다.

COPD는 석탄?암석 분진이나 가스 등에 의한 만성염증으로 기도와 폐 실질이 손상돼 폐기능이 저하되고 호흡곤란이 유발되는 호흡기질환을 말한다. COPD판정을 받을 경우 산재보상법에 따라 장해등급별로 장해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씨는 현재 COPD보상 대상에서도 제외돼있다. 20년 이상을 탄광에서 근무했다는 근무경력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

“1962년도부터 유창물산 황지광업소에서 일했는데, 숨 가쁘고 힘이 들어 1983년4월 광업소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그 바람에 산재 대상이라는 질병 판정을 받아도 근무 경력서를 받을 곳이 없어진 거여요”

이씨의 말이다. 그녀와 같이 “COPD가 발생했다고 인정되는 20년 이상 노출” 경력을 제시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이 추진된 1989년 이후 많은 석탄회사들이 폐업으로 사라진 결과다.

따라서 이씨가 현재 살아가는 유일한 소득원은 진폐의증 판정을 받은 환자들에게 강원랜드복지재단에서 보조금으로 주고 있는 월 10만원이 전부. 그래서 강원랜드 카지노가 고맙기만 하다는데, 이번에는 또 연탄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풍성한 설’을 셀 수 있을 것 같다고 행복해 했다.

설맞이 사랑의 연탄을 나르고 있는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황상덕 회장(중앙)과 회원들.
설맞이 사랑의 연탄을 나르고 있는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황상덕 회장(중앙)과 회원들.

◇1000여 광부가정에 연탄을 선물한 기부천사들

이들에게 따듯한 설을 셀 수 있도록 ‘사랑의 연탄’을 기증한 미담의 주인공들이 있다.

바로 종합법률법진 임직원들과 박용일 고문. 특히 박 고문은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의 교육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어 퇴직광부들의 사정에 밝다. 그의 제안에 따라 태백과 정선, 삼척, 울진 등 폐광지역에 살고 있는 불우환경의 광부들을 위해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와 강원 연탄은행에 ‘설날 선물’로 연탄을 기증하게 된 것.

김수환씨와 이순노미씨 가정에서 받은 300여장을 기준으로 한다면, 1천여 가정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큰 규모다.

“지난해 말 언론보도를 통해 불경기와 청탁금지법 시행, 연탄가격 인상 등의 여파로 극빈층 겨울나기를 돕는 지역별 연탄은행이 텅텅 비었고, 강원도에만 30여만장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연탄 후원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합법률법진 한용호 변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의 말이다. 그들은 2012년부터 매년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황상덕 회장이 추진하는 ‘불우회원 겨울나기 후원 행사’에 상당량의 연탄을 기부해왔다.

황상덕 회장은 “전국에 있는 3천800여명의 회원 중에 아직도 연탄을 땔 만큼 생활이 힘겨운 저소득자, 진폐 장해보상 제외자, 장애급수 연금혜택 비대상자, 독거노인들이 많은 실정”이라며, “법진 임직원들이 보여준 사랑의 봉사정신과 기부문화는 이들의 설맞이 겨울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난해 말 태백지역에서 ‘설맞이 사랑의 연탄’ 나르기에 나선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와 종합법률법진 관계자들
지난해 말 태백지역에서 ‘설맞이 사랑의 연탄’ 나르기에 나선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와 종합법률법진 관계자들

◇법률사무소 직원들, 탄광 막장체험 후 연탄 나르기 동참

‘설맞이 사랑의 연탄’ 배달 행사와 함께 박용일 고문의 안내로 추진한 종합법률법진 직원들의 이색체험도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태백광업이 운영 중인 태백시 싸리밭길(화전동) 소재 석탄광산의 지하 막장 1150m까지 내려가 채탄 중인 근로자들을 위로하는 등 ‘산업재해의 현장’ 체험답사에 나선 것.

“산재보상을 청구하는 광부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보고,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위험성을 안고 근무하는지, 또한 이들의 심리적 압박감은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산재 소송을 제기하는 이들의 심정을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에 충분히 전달할 수 있겠습니다”

한용호 변호사의 말이다. 김민경 대리 역시 작업 중인 광부들로부터 진한 감동을 받았음을 전했다.

“말씀이나 현장사진 등으로만 산재 실태를 전해 듣고 ‘업무상 재해신청이유서’ 서면을 준비하다가 직접 현장을 보고 정말 울컥했어요. 어두운 지하채탄 갱내에서 식사까지 하시며 일하시는 모습은 앞으로의 제 업무에 큰 귀감이 될 것입니다”

이들의 ‘체험 삶의 현장’ 덕분일까. 종합법률법진은 “앞으로도 꾸준히 경비를 절약하고 기금을 모아 광부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 중 하나로 퇴직 광부들이 업무상 질병을 치료하며 쉴 수 있는 ‘산업전사들의 쉼터’ 건립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

협회 황상덕 회장도 “광부 자녀들의 교육확대를 위한 장학사업을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소외계층 퇴직광부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수익사업을 협회 차원에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공동 복지사업이 시급한 것은 금년 4월까지 태백지역에서만 600여명의 탄광근로자가 퇴직할 예정이기 때문. 따라서 퇴직광부들이 지하 갱도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민간차원의 조력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 유승철 뷰티한국 편집위원 cow242@beautyhankook.com

사진 : 유제상 뷰티한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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