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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자 아빠가 돌아온 날, 무채색 풍선은 오색빛을 띠었다

입력
2016.07.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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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두 딸과 아들 하나. 온 가족이 오토바이 한 대에 매달려 세상을 누빈다. 냉정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문학동네 제공
엄마, 아빠, 두 딸과 아들 하나. 온 가족이 오토바이 한 대에 매달려 세상을 누빈다. 냉정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문학동네 제공

달려라 오토바이

전미화 글, 그림

문학동네 발행ㆍ44쪽ㆍ1만1,000원

한 가족이 있다. 엄마, 아빠, 터울이 제법 지는 두 딸과 아직 업혀 다니는 아들 하나. 다섯 식구 사는 이야기를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맏딸이 들려준다. 이들은 늘 어디든 함께 다닌다. 아빠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엄마 아빠의 일터는 고정적이지 않다. 집수리, 페인트칠, 때로 손이 달리는 친구네 양계장 일도 하러 다닌다. 그런 일터들이 쾌적할 리 없건만 아이들은 지겨워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일하는 동안 어수선한 공사장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닭똥 냄새 풀풀 나는 양계장에서 갓 낳은 달걀 맛을 보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엔 일도 없을 터, 가족은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로 간다. 백사장에 세워 둔 오토바이에 파라솔을 기대어 펼쳐 놓고 물놀이를 즐긴다. 아빠가 끌어주는 튜브를 타고 노는 어린 마음은, 언제나 여름이기를 바란다. 시원한 바닷가에 누워 있으면 바람이 솔솔 불기 때문이라지만, 그 때문이기만 할까? 일하는 부모의 등 대신에 얼굴 마주보며 웃을 수 있기 때문일 테지.

허나 현실은 냉정하다. 어느 날 아빠는 늘 식구들을 태우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정성스레 닦아 포장을 씌워 두고 먼 건설 현장으로 일하러 간다. 아이들이 커 가니 목돈이 필요했거나, 가까이엔 더 이상 일자리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홀로 남은 엄마가 옷과 인형 만드는 삯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아빠는 언제 올까? 막내 생일에 놀이동산으로 놀러 가기로 했는데. 돈벌이가 중해도 아빠는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킨다. 이윽고 아빠가 돌아온 날, 그때까지 무채색으로 일관하던 그림은 비로소 환한 색깔을 띤다. 아빠가 사 들고 온 풍선은 알록달록하고, 오토바이에 씌워 둔 포장 또한 벗기는 순간 노란빛으로 반짝인다. 오토바이는 다시 다섯 식구를 태우고 부릉부릉 달린다. 엄마가 손에 꼭 쥔 오색 풍선이 두둥실 뒤를 따른다.

그런데 얼핏 희망차 보이는 마지막 장면을 덮는 마음이 사뭇 복잡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아니 가는 곳 없는 이 가족의 현재는 행복할까 불행할까? 오색 풍선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들의 미래는 희망일까 절망일까? 변화가 거의 없는 엄마 아빠의 표정만큼 아리송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세상엔 이들처럼 비정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이 수없이 많고 헤어짐과 만남을 되풀이하는 가족 또한 그만큼 많다는 것. 그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기든 그러지 않든, 이 사회는 그다지 편안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 이 꿋꿋한 가족의 오토바이 여행이, 주제넘게도 왠지 위태롭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게다. 그러니 책 속에서만큼은 ‘오토바이 가족’이 정원을 초과했다거나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딱지 떼이는 일이 없기를….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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