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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직전 아들 알아 본 치매 老母 "같이 안 가?" 오열 또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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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직전 아들 알아 본 치매 老母 "같이 안 가?" 오열 또 오열

입력
2015.10.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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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동안 간직해 온 금반지

"며느리 주라" 아들 손에 쥐어줘

최고령 구상연·이석주 할아버지

구두 건네고 목도리 벗어주고

신혼 2년 만에 헤어진 부부

"생일날 미역국 계속 떠 놓을게"

26일 진행된 작별상봉에서 남측 이산가족 어머니 김월순(93)씨가 북측 아들 주재운(72)씨와 작별을 앞두고 얼굴을 맞대며 눈물흘리고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6일 진행된 작별상봉에서 남측 이산가족 어머니 김월순(93)씨가 북측 아들 주재운(72)씨와 작별을 앞두고 얼굴을 맞대며 눈물흘리고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고마운 세상이다. 우리 재은이를 만나고…. 내가 죽어도 소원이 없다.” 치매에 걸린 구순의 노모가 이별이 다가온 순간에야 꿈에도 그리던 아들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칠순의 아들은 “아이고, 우리 어머니 이제 정상이시네”라며 노모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봉기간 동안 치매로 인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남측의 김월순(93) 할머니가 마지막 날인 26일에야 큰 아들 주재은(72)씨를 알아보고 모자상봉의 한을 풀었다. 정신을 차린 김 할머니는 큰 며느리에게 주려고 한 평생 간직해왔다는 붉은 색 알이 박힌 금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 아들에게 건넸다. “필요 없다”고 한사코 마다하는 아들에게 노모는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갖다 버리더라도 갖고 가라”며 기어코 손에 쥐어줬다. 버스에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에 남측 가족들이 이동하자 노모는 “(큰 아들은) 같이 안가?”냐고 두리번거렸지만 아들은“통일되면 만납시다, 꼭 살아 계세요”라는 말만 되뇌며 흐느꼈다.

1972년 오대양호 사건 당시 납북된 정건목(64)씨가 26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뒤 남측으로 향하는 버스에 탄 어머니 이복순(83)씨를 떠나 보내며 눈물을 닦고 있다. 금강산=뉴시스
1972년 오대양호 사건 당시 납북된 정건목(64)씨가 26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뒤 남측으로 향하는 버스에 탄 어머니 이복순(83)씨를 떠나 보내며 눈물을 닦고 있다. 금강산=뉴시스

64년 만에 만난 모자의 상봉은 그렇게 속절없이 끝날 운명이었다. 1·4 후퇴 때 재은씨를 친정에 맡겨둔 채 둘째 아들만 업고 피난을 내려왔던 김 할머니는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영영 보지 못할 아들을 향해 차창을 두드리며 오열했다. 차창 밖에서 망연자실 손을 흔들던 칠순 아들은 어머니가 탄 버스를 쫓아 내달려 봤지만 소용 없었다. 60여년 전 “열흘만 있다 올게”라며 고향집을 떠났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기약도 하지 않았다.

1년 8개월 만에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이 이날 2차 상봉단의 작별상봉으로 모두 마무리 됐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12시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되새긴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산가족 2차 상봉 남측 최고령자인 구상연(98) 할아버지가 26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뒤 아들 형서(42)씨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발길을 돌리려 하자 북측의 큰 딸 송옥(71ㆍ오른쪽)씨와 작은 딸 선옥(68)씨가 애끓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산가족 2차 상봉 남측 최고령자인 구상연(98) 할아버지가 26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뒤 아들 형서(42)씨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발길을 돌리려 하자 북측의 큰 딸 송옥(71ㆍ오른쪽)씨와 작은 딸 선옥(68)씨가 애끓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북 통틀어 최고령자인 구상연(98), 이석주(98)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돌보지 못한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부산한 모습이었다. 북측의 아들과 손자에게 입힐 양복을 준비해왔던 이 할아버지는,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하는 아들에게 자신의 코트와 목도리를 냉큼 벗어 줬다. 다행히 아버지와 체격이 비슷한 아들에게 검은색 코트는 꼭 맞았다.

4세, 7세 때 헤어진 딸들에게 꽃신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60여 년 만에 지킨 구 할아버지는 자매에게 신길 검은색 구두 한 켤레씩을 더 건넸다. 너무 늦게 약속을 지킨 아버지의 미안한 마음이 서려 있었지만, 북측 딸들은 누가 볼 새라 테이블 아래로 곧장 신발을 숨기는 모습이었다.

신혼 2년 만에 헤어진 남측의 남편 전규명(86) 할아버지를 만난 북측 아내 한음전(87) 할머니는 “살아 있는 거 알았으니 이제 원이 없다. 생일날 미역국 계속 떠놓을 게”라며 애써 태연한 척 마지막 이별의 인사를 건넸지만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상봉 내내 북측의 아내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전 할아버지는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좋았던 게 아닌가 싶어. 만나질 않았으면 이렇게 금방 헤어지지 않는 건데….”라며 가슴을 쳤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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