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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50% 이상 등 양적 기준만 평가… 국제부실학회 참가 용인하는 국책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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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50% 이상 등 양적 기준만 평가… 국제부실학회 참가 용인하는 국책사업

입력
2018.07.26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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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플러스21 경비지원 심사 허술

고액 투고료 노린 학회에 무방비

학회 수준ㆍ진위 확인 기준 세워야

일명 약탈적 학회(Predatory Conference)라 불리는 가짜학회 와셋(WASET) 홈페이지 첫 화면. 런던, 프라하, 도쿄 등 여러 장소, 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회가 열린다고 소개되어 있다. 참가자들이 이중 한 곳을 골라 발표논문과 등록비를 보내면 별다른 검증작업 없이 쉽게 학술대회에 참가해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 와셋 홈페이지 캡쳐.
일명 약탈적 학회(Predatory Conference)라 불리는 가짜학회 와셋(WASET) 홈페이지 첫 화면. 런던, 프라하, 도쿄 등 여러 장소, 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회가 열린다고 소개되어 있다. 참가자들이 이중 한 곳을 골라 발표논문과 등록비를 보내면 별다른 검증작업 없이 쉽게 학술대회에 참가해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 와셋 홈페이지 캡쳐.

“연구재단이 정한 국제학술대회 규정을 따른 것뿐인데 억울합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의 두뇌한국(BK)21플러스 사업단 지도교수 A씨의 하소연이다. 이 사업단 대학원생들은 최근 3년여간 와셋(WASET)이라는 해외 단체에서 주관하는 학술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고 BK21사업비에서 경비를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참여한 와셋이라는 단체가 고액의 논문 투고료를 노리는 약탈적 학회(Predatory Conference), 즉 사실상 가짜 학회라는 지적들이 쏟아지면서 사업단은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A교수는 “학회가 정부 기준에 부합했으며 그 동안 경비지원도 계속 받아왔다”며 “법을 어긴 일은 없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BK21플러스는 정부가 석박사 인재양성을 위해 1999년부터 운영해 온 BK21사업의 연장으로 2017년 현재 544개 사업단에 2,727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A교수는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25일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BK21플러스 사업 규정상 대학원생이 ▦구두발표 논문 인문계열 10건(과학기술 계열 20건) 이상 ▦4개국 이상 참가 ▦구두 발표자중 외국인 50% 이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할 경우 경비를 지원한다. 여기에는 항공료ㆍ학회 참가비 및 등록비와 기타 여비가 포함된다. 학회에 따라 1인당 약 300만~500만원이 지원되는 셈이다.

[저작권 한국일보]두뇌한국플러스 국제학회_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두뇌한국플러스 국제학회_신동준 기자

와셋을 비롯한 여러 약탈적 학회들은 이런 양적 평가기준을 쉽게 충족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와셋의 경우 참가자가 홈페이지에 접속해 원하는 주제와 일정, 장소의 학회를 고른 뒤 논문 투고 메일과 참가비를 보내면 등록되는 구조다. 이때 기존에 등록한 논문발표자 중 한국인이 몇 명인지 확인해 학술대회를 고른다면 ‘외국인 50% 이상’과 같은 기준은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충북소재 사립대 연구교수 B씨는 “실적에 목마른 연구자들이 그 동안 암암리에 이용해온 방법”이라고 말했다.

경비지원을 위한 사후 심사도 가짜 학술대회를 걸러내기엔 역부족이다. 심사가 서류확인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연구재단은 각 학교 BK21플러스 사업단이 제출한 ‘국제학술대회 인정기준 확인서’와 주관기관이 발급한 확인서, 발표 논문 등을 확인하는데 여기서도 학술대회 자체의 질은 평가요소가 아니다. 연구재단 측은 “연간 평가 때 해당 분야 평가위원들이 적합성을 확인하고 (가짜 학술대회라 판단되면) 직권취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껏 평가를 통해 가짜 학회 참여가 적발된 적은 한 건도 없다. 이 기준이 유지되는 한, 내년에도 와셋이 주관하는 학술대회에 참여할 때 대학들이 경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 기준은 대폭 완화됐다. 종전에는 국제학술대회의 주관 기관이 ‘해외 저명학회 본부’이거나 ‘해외 저명대학’일 경우에만 인정됐지만 2011년 이 기준이 삭제됐다. 대학원생의 학회 참여를 늘리기 위해 ‘허들’을 대폭 낮춘 것이다. 교육부 측은 “학술지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어 질을 따질 수 있지만 학술대회는 그렇지 않아서 양적 평가가 불가피하다”고만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구의 질이 아닌 양으로 성과를 따지는 풍토가 계속되면 도덕적 해이가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정부가 최소한 국가 세금을 지원하는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학술대회의 수준과 진위여부를 따질 수 있는 기준을 세워 연구자들이 스스로 연구윤리를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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