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징역 범죄에 벌금형 선고… 엉터리 반복하는 판검사

알림

징역 범죄에 벌금형 선고… 엉터리 반복하는 판검사

입력
2017.11.06 04:40
12면
0 0

벌금형에 노역장 명령 빠뜨려

안 내고 버텨도 강제노역 못 시켜

검사는 판결 잘못에 항소도 안해

법규 착오 전자발찌 기간 반토막

누범기간 또 때렸는데 가중 누락

잘못된 판결 항소하지 않으면

비상상고 제도 이외 방법 없어

지난 5월 서울북부지법에서는 황당한 판결이 나왔다. 명품 선글라스 모조품을 소지한 혐의(상표법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모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면서 ‘노역장 유치 명령’을 빠트린 것이다. 형법은 기한 내 벌금을 내지 않으면 1일 이상 3년 이하 강제 노역을 하게끔 노역장 유치 명령을 벌금 선고와 함께 반드시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항소심은 “1심에서 노역장 유치 명령을 누락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지만 검사 항소 없이 피고인만 항소할 경우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형을 가중할 수 없어(불이익변경금지원칙) 노역장 유치를 명하지 못했다. 졸지에 정씨는 벌금을 안 내고 버티면 강제 노역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일선 법원에서 판사 착오나 실수로 함량미달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법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잘못된 판결인데 검사도 항소하지 않아 항소심에서 바로잡히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지난 2015년 미성년 친족 성폭행으로 전주지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A씨는 전자발찌 10년 부착 명령을 받았다. 이듬해 열린 항소심에서 “19세 미만 성폭행 관련법에 따라 20년 이상으로 부착기간을 정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피고인만 항소해 기간을 늘리지 못했다. 2015년 창원지법에서도 유사범죄 피고인이 법관 착오로 전자발찌 10년 부착 명령을 받는 등 전자발찌 기간 계산 실수가 법원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약에 사용된 장비를 반드시 몰수해야 되는 마약류관리법을 착각해 주사기 몰수 명령을 빠트리는가 하면(울산지법) 누범 기간에 또 사람을 때린 상해죄 피고인에게 누범가중을 하지 않은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서울남부지법) 모두 피고인만 항소해 2심에서 원심 판결을 고치지 못했다.

단순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오판도 나왔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으면서 친형 신분을 도용한 김모씨에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약식명령을 확정했다. 타인 신분을 위조하는 범행(사서명위조)은 해악이 커 징역형만 내리도록 법에 규정돼 있지만, 약식 재판에서 법관이 실수했고, 검사는 항소하지 않았다.

판사의 실수, 이에 항소하지 않는 검사의 무책임으로 엉터리 확정 판결이 나오지만 이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재판을 다시 해달라고 요청하는 비상상고 제도만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동료 경찰 부탁을 받고 음주운전자를 그냥 귀가시킨(직무유기) 경찰관이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형이 확정됐다가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비상상고 했었다. 직무유기죄도 징역형만 내려야 한다.

판결 잘못이 반복되는 데는 법원의 제한적인 판결문 공개도 한몫 한다. 전국 각급 법원에서 나오는 판결문 가운데 홈페이지에 판결문이 공개되는 비율은 지난해 0.12%(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였다. 법관 근무평정도 항소율, 파기율, 사건처리 건수 등 정량 평가 중심이기 때문에 법관들은 사실상 ‘실수해도 면책 받는 성역’에 있다는 지적이다.

일선 법관들은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많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부장판사 출신 한 로펌 변호사는 “재직 당시에도 한 법원에서 한 달에 두 세 건씩 이런 실수가 나왔다”며 “직업의식 부족으로 밖에 볼 수 없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업무상 실수를 했으면 인사나 평가에 반영하는 등 피드백으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며 “실수가 누적되면 사법 불신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비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