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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분노한 시민, 뺨 맞는 전경환

입력
2015.03.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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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29일 서울 서소문 대검청사는 검찰청 개청 이래 최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전직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5공 시절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역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전경환씨가 검찰에 소환됐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도 10여 명의 사진기자를 급파해 청사 곳곳을 지켰다.

오전 10시 포토라인에 들어서는 전씨를 향해 카메라 스트로보가 불을 뿜었고 그 순간, 보도진을 뚫고 나온 한 시민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전씨의 뺨을 후려갈겼다. 회사원 김인철씨는“출근길 버스 안에서 전씨가 소환된다는 뉴스를 듣고 화가 나서 달려왔다”는 말을 남긴 후 사라졌고 계단 끝에 자리했던 권주훈기자는 역사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아 그 해 보도사진전 금상을 수상했다.

밤샘조사를 마친 전씨는 결국 이튿날 새벽 구속 수감됐고 이는 5공 청산을 알리는 노태우 정부의 신호탄이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k.co.kr

1988년 3월 2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검찰에 소환되며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실린 한국일보 사회면 기사. 노태우 정부 출범 불과 1개월 만의 일이다.
1988년 3월 2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검찰에 소환되며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실린 한국일보 사회면 기사. 노태우 정부 출범 불과 1개월 만의 일이다.

알선수재와 횡령 등의 혐으로 구속수감된 전경환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7년에 벌금 22억, 추징금 9억8천900만원이 확정됐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중수3과장은 현 청와대 민정특보를 맡고 있는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다.

1987년 대선에서 형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총선에까지 나갈 꿈을 꾸었던 그로서는 본인이 5공청산의 첫 제물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졌던 실세였지만 정권이 바뀌니 영어의 몸이 됐다. 전경환씨가 구속 수감을 위해 서울 서소문 대검청사(덕수궁 옆, 지금의 서울시청 별관)를 나서고 있다. 1988년 3월 31일 한국일보 1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졌던 실세였지만 정권이 바뀌니 영어의 몸이 됐다. 전경환씨가 구속 수감을 위해 서울 서소문 대검청사(덕수궁 옆, 지금의 서울시청 별관)를 나서고 있다. 1988년 3월 31일 한국일보 1면

배우 이성재가 출연한 영화 중에 '홀리데이'가 있다. 탈옥수 지강헌의 얘기를 다룬 영화다.

1988년 10월, 전국에 서울올림픽 개최 열기가 아직 한창일때 556만원을 훔치고 달아나다 붙잡힌 지강헌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 받았다. 수십억원을 해먹은 전경환이 고작 7년형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강헌은 동료들과 교도소 탈출을 감행, 전국을 떠돌다가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숨어 들었다.

결과는 비극으로 끝났다. 10월 16일,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던 그는 전경환을 빗댄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말을 남긴 후 유리로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과다출혈로 숨졌다.

그가 떠난 골목에는 영국 록그룹 비지스의 'Holiday'가 구슬프고도 장엄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지강헌은 대치하던 경찰에게 마지막으로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주길 원했지만 경찰이 착각을 해 스콜피언스의 노래를 들려줬다는 후문이다.)

탈주범 지강헌이 서울 북가좌동의 한 주택에서 권총을 손에 든채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지강헌은 여기서 홀리데이 팝송을 들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일보 김건수기자
탈주범 지강헌이 서울 북가좌동의 한 주택에서 권총을 손에 든채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지강헌은 여기서 홀리데이 팝송을 들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일보 김건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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