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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유승민의 2차 항전

입력
2016.03.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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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도 머뭇거리는 최후의 일격

경선ㆍ무소속 출마 뭐든 응전해야

대구 민심의 내향성 수준이 관건

며칠 동안 여당의 4ㆍ13 총선 공천에 이목이 사로잡혔다. 예상대로 ‘진박(眞朴)ㆍ친박(親朴)’의 권력의지가 서린 이한구 새누리당 공관위원장의 칼날은 섬뜩했다. ‘살생부(殺生簿)’대로의 가상훈련을 마친 듯 거침없이 ‘비박(非朴)’을 잘라냈다. 친이(親李)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나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물론이고, ‘유승민계’ 의원들까지 단숨에 쳐냈다.

그 서슬 퍼런 칼날이 유승민 의원 앞에 멈춰 섰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유승민 의원의 낙천 여부를 기다렸지만 오리무중이다. 칼자루를 쥔 쪽의 뜻은 분명하다. 스스로 속마음을 다 드러냈고, 살생부나 윤상현 의원의 “죽여!” 막말 파문으로 이미 확연해졌다. 무조건 자른다는 확고한 의지가 왜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이 공관위원장이 “정무적 판단”이라고 언급했듯, 정치적 손익계산에 착오가 빚어져 애초의 계획을 손질해야 할 상황이 우선 떠오른다. 유 의원의 공천 여부에 쏠린 국민 관심이 이 정도로 클지는 몰랐을 수 있다. 그런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외곽부터 치고 본진(本陣)에 칼을 겨누자는 2단계 전술을 택했다. 낙천자들이 유 의원을 중심으로 벌일 집단항쟁의 기세를 최대한 흩뜨리려는 묘수다. 잠시 환성이 올랐다. 그러나 막상 유 의원을 치려니, 본진만의 기세도 만만찮았다. 공격은 성공하겠지만, 적잖은 손실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런 손실의 최소화 방안으로 택한 게 현재의 지공(遲攻)인 셈이다. 말이 지공이지, 선거 일정상 길어야 3~5일 안에 끝내야 할 공격이다.

일방적 낙천은 선택하기 쉽지 않다. 유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을의 민심이 아직 ‘배신의 정치 심판’으로 기울지 않은 데다 수도권 민심 동향도 거센 역풍을 예고한다. 다만 대구에서의 무소속 돌풍과 수도권에서의 역풍으로 커다란 손실을 겪더라도 배신의 정치를 꼭 심판하라는 최고지휘부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감행할 수 있다.

아예 유 의원을 이재만 전 구청장과의 경선에 던지는 방안도 있다. 그 동안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유 의원이 압도적 우세를 보였지만, 현란한 칼부림으로 청와대의 의사가 대부분 관철된 마당이라면 지지도 격차가 많이 좁혀졌을지 모른다. 근소한 격차라면 표본 추출과 설문 내용에서의 미세한 조정으로도 뒤집을 수 있다. 유 의원이 동지들의 집단학살을 당하고도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꺼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유 의원은 지난해 6ㆍ7월 한 차례 청와대와 친박의 공세를 겪었다.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제약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신경전이 이어지고, ‘배신의 정치’ 선전포고와 거부권 행사라는 박 대통령의 본격적 공격에도 한 동안 버텼다. 당시 김무성 대표나 정의화 국회의장의 측면 지원을 받는 듯했지만 실상은 외로운 항전이었다. 결국 무릎을 꿇는 것으로 1차 항전을 끝내면서 ‘법과 원칙, 정의’라는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국민 앞에 토로했다.

당시 각오에 변화가 없다면, 여당 공관위의 자신에 대한 2차 공세에 항전해 마땅하다. 원내대표라는 당직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치생명을 뺏겠다는 상대의 공세는 당헌ㆍ당규 상 일반원칙과 예외를 뒤바꾼 것인 만큼 원칙을 지키기 위한 항전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낙천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든, 경선에 임하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자신을 따르던 의원들의 낙천에 상심하거나 ‘무소속 연대’움직임을 지켜볼 시간 여유도 없다. 현실정치는 냉혹하고,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18대 총선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을 따르던 의원들 대부분이 공천학살을 당했지만, 동요하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에 임했다. 그리고는 이내 지지세력을 모아 청와대도 건드릴 수 없게 했다. 배울 게 많은 실례다.

문제는 지역구 민심이다. 공천개혁과 거리가 먼 여당에 대한 중도ㆍ무당파의 전국적 실망과 달리 대구의 여당 지지는 공고하다. 상대적으로 지역발전이 더디고 미래 전망도 흐릿할 때 나타나기 쉬운 내향성이다. 그 강화 여부가 유승민 2차 항전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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