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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네 탓 문화 속에서는 4차 산업혁명도 없다

입력
2017.10.20 13:3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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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 간의 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119 구급대원들은 갖은 수난을 겪었다. 술에 만취해 집까지 차량편을 요구하는 신고, 귀가가 늦어지는 남편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요구하는 신고, 고장 난 김치냉장고 수리를 요구하는 신고, 여행 중에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달라는 신고 등 어이없는 신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사안으로는 구급차가 출동할 수 없다는 상황실 구급대원의 설명에 본인이 낸 세금을 운운하며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고는 민원을 넣겠다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고 한다.

구급대원들이 당한 수난도 문제지만, 상황실에서 어이없는 신고 접수에 응대하는 동안 위급한 상황에 구급차와 구급대원을 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소중한 사회적 자원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작은 편익을 위해 낭비하는 이기적인 태도와 자신의 편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입을 상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파렴치함으로 가득 찬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책임은 어디에도 없고 권리만 넘쳐 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북 핵과 한미, 한중 간의 통상 마찰로 안보와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며 국가적 위기 상황에 놓인 이 때에도 우리는 자신의 밥 그릇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밥 그릇이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남 탓이고 정부 탓이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처럼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책 없는 희망을 주는, 화려한 형용사로 치장된 책임 없는 위로로 사회 구성원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부추겨 ‘네 탓 문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듯 하다.

최근 극장가에서 관객 몰이를 하고 있는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화제다. 당쟁이 가져온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최근에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 통합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모두가 국민적 통합이 어려운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고 있는 데 있다. 노동계는 재계 탓, 재계는 정부 탓, 정부는 국회 탓, 여당은 야당 탓, 야당은 여당 탓을 하고 있다. 모두가 네 탓이다. 그리고 서로의 과오를 들추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달 28일 한 스포츠 행사에서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세 명의 미국 전직 대통령들이 어깨동무를 한 사진이 계속 마음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이 아른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이 시장과 사회에 만들어 낼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파편화다. 제품과 서비스, 지식과 노동력, 조직과 관계 등 모든 유무형의 재화들이 파편화되어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고 하면서 시장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파편화된 사회에서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생겨날 것이며, 그러한 이해관계의 조정과 이해관계자들의 통합은 파편화된 사회의 성패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위기 속에 각박한 삶에 지친 국민들에 대한 위로는 지도자에게 꼭 필요해 보이지만 대책 없는 희망을 주는 책임 없는 위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미래를 위해 때로는 자신에 대한 지지도 쯤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정치 지도자, 때로는 우리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꾸짖어 줄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을 자주 만났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약속을 믿고 하나가 되는 우리를 기대해 본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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