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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하는 사람을 주인으로 세우는 일자리 정책을

입력
2017.07.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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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에는 한 사회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모순이 숨겨져 있다. 그 사회의 구조화되고 불평등한 신분질서의 전선이 거기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일자리는 노예노동이 이루어지는 틀이자, 그 사회 하층 신분자인 노예들의 사회적 무권리 상태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장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자리 역시 사회적인 지배-피지배 관계를 담지하고 있다. 비록 명시적인 신분이 아니라, 겉으로는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고용관계를 맺지만, 노동자들은 그를 매개로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들어가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그 사이 인류가 성취한 정치체제의 민주화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적 지배질서 내에서도 일자리를 영위하며 노동하는 이들이 보다 나은 노동조건과 삶의 기회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노동을 할 권리와 노동에서 홀대 받지 않을 권리를 부여 받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을 금지하며, 인종, 성, 연령, 장애여부에 따른 차별이 완화되어 왔다. 노동의 힘이 보다 큰, 질 좋은 민주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은 직업훈련을 받을 권리, 양질의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 충분한 연금을 받을 권리 등 일자리로의 진입과 이동 및 퇴장과 관련해서도 보다 큰 권리를 향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명시적 계약 및 지배-종속관계를 가급적 흐릿하게 하는 식으로 새로운 방식의 지배-피지배 관계가 만들어져 왔다. 그를 통해 사용자는 고용관계를 맺은 노동자들이 노동법적 장치를 통해, 그리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역량을 통해 누리게 되는 보호기제의 비용을 회피하고, 노동력을 보다 저렴하게 또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이른바 간접고용으로 명명되는 이러한 관행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횡행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노동하는 이들을 무권리 상태로 내몰고 있다.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고 자임하고 나선 문재인 정부에게 이러한 상황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중차대한 과제이다. 지난 정부에서 고용률 70%를 이야기하고선 허드레 일자리들만 만들다 말았던 경험에 비추었을 때, 현정부는 일자리의 양 뿐 아니라 질을 같이 챙겨야 하는 부담감이 클 것이다.

오늘날 고용관계를 넘어서까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일자리 관계의 질서는 매우 복잡하다. 특히 지속 가능한 일자리 질서를 지속 가능한 산업질서를 겸비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입체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적 설계가 필요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난 10년간 후퇴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복원하고 더욱 더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일자리에도 쏟아 부어야 하는 과제이다. 즉, 일자리를 매개로 한 사회적인 지배-피지배 관계의 재구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자리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일자리를 부여하는 일, 그리고 종래의 일자리의 약자들에게 보다 높은 임금을 비롯한 양질의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그들이 자신의 일자리의 주인으로 서게 만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일자리 정책은 노동권과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을 품고 있어야 보다 온전한 것이 될 수 있다. 현 정부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일자리 위원회를 통해 일자리 상황을 국정의 중심에서 챙기고 있다. 그것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국민들의 생계를 구제하는 것을 넘어서, 국민들이 일자리의 현장에서 침해 받고 있는 인권과 노동권을 실현해 가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일자리 운용의 민간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는 노와 사의 협조와 협력이 대등하게 이루어지도록 균형 잡힌 노사관계의 틀을 새롭게 재구성해 주는 작업도 병해되어야 한다. 일자리의 양과 질을 챙기는 문제는 국민들이 일자리에서 향유하는 인권과 권리행사의 수준을 높이는 과제와 분리될 수 없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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