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정병진 칼럼/10월 31일] "대통령 3년 반만 하겠습니다"

알림

[정병진 칼럼/10월 31일] "대통령 3년 반만 하겠습니다"

입력
2012.10.30 12:07
0 0

"정치쇄신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곧바로 헌법개정을 추진하겠습니다. 임기 4년의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겠습니다. 저는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까지만 임기를 수행하겠습니다. 그 때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국회의원을 동시에 선출할 것입니다. 이후 4년마다 우리 정치는 심기일전의 계기를 맞게 되며, 국민은 효율적인 평가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저에게 보장된 5년의 임기(2018년 2월까지) 가운데 1년 반을 우리나라 정치쇄신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것입니다."

정치쇄신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강하다. 선거가 채 5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선 후보에게 이러한 선언을 주문하는 게 뜬금없는 일일까? 지난 17일 여야 원로정치지도자들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가 핵심인 개헌 약속하라고 후보들에게 제안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어느 후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못해 "검토해야 할 사안" 정도의 코멘트를, 그것도 '선거캠프의 입장'이라며 내놓았다.

세 후보의 선거캠프 인사들을 만났다. 본인의 희생을 전제하는 개헌 약속이 참 좋은 아이디어로 믿었기에 후보 개인의 의향이 궁금했다. 후보에게까지 갈 것도 없이 반응은 냉담했다. "반쪽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 줄 아느냐"는 눈치였다. 대부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싶어 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하며 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았다.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이번 대선 상황이 개헌 문제를 그렇게 못박아 둘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공감하는 쪽이 많았다. 하지만 "5년 임기가 보장돼 있는데 누가 스스로 반쪽 대통령을 자처하겠느냐"며 회의적인 전망이었다.물론 2016년 총선 때까지 자신들은 아무런 손해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한결같이 정치쇄신을 주장하며 이런저런 방안을 구상 중이라는 세월이 한 달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국민들은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정치를 쇄신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를 쇄신하겠으니 믿어달라'며 인기몰이에 열중하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효과적이고 믿을만한 정치쇄신은 권력구조 개편에서 시작돼야 하고, 그것은 개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4년 중임제'를 중심으로 한 논의는 이미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고 있어 정치 결단과 시기 선택만 남아 있다. 10년 전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나 집권 초기엔 이래서 안되고, 집권 후기엔 저래서 안되고 하여 두 차례 기회를 뜨거운 감자 다루듯 넘겨버렸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현행 권력구조 아래서는 '초기와 후기의 상황'에 특별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약속을 하여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가능할 일이다.

원로 정치인들의 제안이 나왔을 당시 박 후보 측은 "바람직하다, 언젠가 입장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문 후보 측은 "필요하다, 당선 된 후에 국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 측은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보의 직접 의지가 담겨있다기 보다 '후보 측'에서 밝힌, 무의미한 코멘트에 불과해 보인다. 두 달 후면 '100% 대통령'이 될 텐데 굳이 '반쪽 대통령'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후보 측 캠프' 입장에선 눈앞에 다가온 파이를 굳이 일부만 먹겠다고 약속할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다.

후보등록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지금의 상황은 세 후보 가운데 누가 승리할 지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우열이 드러나게 되면 제 살을 스스로 깎아야 하는 이러한 개헌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우세한 쪽에선 예상되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질 것이어서 그렇고, 열세에 처한 쪽에선 반전을 위한 전략적 카드로 인식되어서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필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