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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전예방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16.04.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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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리스크 예방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하다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의 무게를 절감한다. 이 속담의 진정한 함의는 ‘소를 잃기 전에는 외양간을 고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소를 잃기 전에 미리 외양간을 고치기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과거의 경험에 너무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 물론 합리적이다. 그러나 항상 그럴까.

이에 관한 우화가 하나 있다. 칠면조 한 마리가 존에게 팔려왔다. 존은 아침 9시에 종을 쳐서 이 칠면조를 불렀다. 와서 먹이를 먹으라고 손짓했다. 칠면조는 불안했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다가가서 눈치를 보며 먹이를 먹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존은 9시만 되면 종을 쳤고 칠면조는 조심스레 접근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여섯 달, 아홉 달이 지나자 칠면조는 존의 종소리만 들으면 바로 달려갔다. 칠면조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존이 종을 치면 먹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철칙으로 받아들였던 것.

1년째 되는 날 존의 종소리를 듣고 달려간 칠면조. 놀랍게도 존은 칠면조의 목을 칼로 내리친다. 존은 칠면조를 사올 때부터 1년 동안 잘 키운 다음 추수감사절에 바비큐를 만들어 먹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칠면조의 역설’을 통해 과거 경험에만 비추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설명한다. ‘과거에 아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칠면조가 빠진 오류와 오십보 백보다.

두 번째 이유는 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돈, 시간, 수고로움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상의 통찰력 있는 미국 하원의원이 테러를 방지하는 법을 발의해서 2001년 9월 10일부터 발효하게 만들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 의원은 모든 항공기의 조종실 출입문에 방탄장치와 자동 잠금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승객들의 항공기 탑승 시 검문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시행되자 항공기를 이용하는 시민들과 항공사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2년 뒤 성난 시민들과 항공사는 짐 의원을 선거에서 떨어뜨렸다. 당연히 이 법 때문에 9ㆍ11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들은 그 덕에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음을 끝내 알지 못했다. 위 사례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예견해서 월스트리트의 현자(賢者)라 불리는 나심 탈레브가 쓴 ‘블랙스완’에 나오는 것으로, 예방을 실천하는 사람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 고전 ‘갈관자’란 책에는 전설적 명의(名醫)인 ‘편작’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는 괵나라의 공자가 가사상태에 빠졌을 때 그를 살려냈다. 괵나라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그를 ‘명의’라고 칭송했다. 그러자 편작은 자기 형들이 훨씬 명의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 첫째 형은 병이 아예 발생하기 전에 상대방의 안색을 보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따라서 상대방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 결국 그는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기 때문에 조언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둘째 형은 병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근본적인 치료를 한다. 상대방은 아주 약한 고통만을 느끼고 완치된다. 큰 고통을 겪지 않은 상대방은 역시 고마움을 잘 모른다.

편작 자신은 상대방이 병으로 심하게 고통받을 때 독한 약을 써서 병을 다스린다. 자신의 치료법은 이미 때를 늦었거나 환자의 건강한 몸도 어느 정도 상하게 하는 것이라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자신의 큰 고통이 없어지자 편작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며 명의라고 칭송한다는 것.

2년 전, 우리는 여러 소중한 생명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사고 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미 여기저기서 불행한 사태의 전조와 징후가 포착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무신경하게 취급하고 말았다. 사고가 생기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까.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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