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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한반도 위기를 지켜보는 아베 총리의 속내

입력
2017.09.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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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뉴욕 팰리스호텔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헤드셋을 벗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뉴욕 팰리스호텔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헤드셋을 벗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1992년 10월 13일자 국내 일간지 외신면에는 ‘일본군 1만명 한국전 참전’이라는 당시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러시아 국방부 연구원의 주장을 소개한 이 기사는 한국전쟁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일본 총리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약 1만명 규모의 병력을 극비리 한반도로 파병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원은 일본이 한국전으로 남한의 공산화가 이뤄질 경우 국가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아래 지원을 요청한 미국의 뜻에 따라 경찰예비대 8,000명과 함정 46척을 교전 중인 한반도로 보냈다고 했다. 미국의 원자탄 공격으로 괴멸된 지 불과 5년여 만에 일본이 병력을 추슬러 한반도로 보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려웠다. 이 연구원은 ‘증거’로 1953년 북한군으로부터 러시아가 넘겨받은 일본군 포로의 존재도 내밀었다.

터무니없다고 여겨졌던 러시아 연구원의 주장은 1998년 발간된 ‘일본 해상보안청 50년사’를 통해 입증되면서 일본 정부도 인정한 셈이 됐다. 1950년 10월 연합군의 명령으로 참여한 전투에서 일본 기뢰제거부대원들이 작전을 벌였고 이중 19명이 사상했다는 기록이 일본 정부의 출간물에 실린 것이다.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패전국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67년 전 이미 발동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비록 일본 정부는 이러한 ‘역사’를 적극 인정하지 않지만, 당시 참전했던 승조원들의 기록이 드러나면서 패전 직후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웃국의 위기를 이용하고 참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일본의 실체는 명징해졌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군사작전 참여 사실을 지금 끄집어내 돌아보는 이유는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움직임 때문이다. 강경한 대북제재 시행에 있어 최상의 궁합을 보여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공조는 특히 눈에 부실 정도다. 언론들로부터 ‘평화의 관례’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주 유엔 총회 데뷔 연설 후 아베 총리는 그와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의 ‘힘’을 칭찬했다. 아베 총리로부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신조(아베 총리의 이름)의 힘이 필요하다”라며 마치 한국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일본점령군 사령관이 그랬듯 유사시 일본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 같은 뉘앙스마저 풍겼다. 북한의 비이성적인 핵ㆍ미사일 개발과 이에 따른 한반도 위험이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지만 자유 진영의 리더로 자칭하는 두 정상이 외교와 대화의 무대인 유엔에서 물리적 힘을 내세운 장면은 보기 불편했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동의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에 호응하는 모습은 지난 봄 한반도 위기가 격상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유지해온 자세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감내하고서라도 일본의 힘을 키우고 역내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겠다는 전형적인 일본 우익의 모습이지만, 아베 총리의 경우 시종일관 전쟁 혹은 그와 비슷한 수준의 격동을 가정하면서 이를 자신의 정치적 위기탈출 장비로 활용해왔다는 게 더 문제다. ‘사학 스캔들’로 추락하는 지지율을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북한이라는 적의 위험성을 한껏 끌어올리면서 회생시키는가 하면, 제재보다 대화에 힘을 실어왔던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 이미지를 굳혀 안보 불안에 휩싸인 일본 유권자들로부터 꾸준히 점수를 따고 있다.

한반도가 절멸과 핵폭탄이라는 끔찍한 말로 난도질 당하는 지금, 아베 총리는 대외적 위기상황을 한껏 이용해 장기집권과 자위대 근거 규정을 헌법에 명기하는 식으로 ‘전쟁 가능한 국가’를 가능케 하는 개헌 실현을 위해 중의원 해산을 준비 중이다. 아베 총리가 한국전 발발 때 신당에 머리를 숙이며 “이야말로 하늘이 도우심이다”고 말했던 요시다 총리의 현신이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양홍주 국제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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