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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한화의 빅딜 그 뒷얘기들

입력
2014.11.2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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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지난 26일 삼성의 석유화학·방위산업 부문 4개 계열사의 매각·인수를 통해 사업부문 '빅딜'을 단행했다. 삼성그룹의 석유화학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과 방산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넘기는 초대형 양수도 계약이다. 사진은 한화그룹(왼쪽)과 삼성종합화학의 로고. 연합뉴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지난 26일 삼성의 석유화학·방위산업 부문 4개 계열사의 매각·인수를 통해 사업부문 '빅딜'을 단행했다. 삼성그룹의 석유화학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과 방산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넘기는 초대형 양수도 계약이다. 사진은 한화그룹(왼쪽)과 삼성종합화학의 로고. 연합뉴스

삼성그룹 화학계열사 삼성토탈은 지난주말 공장이 있는 충남 서산시에서 임직원, 가족, 지역 주민, 국내외 거래처 관계자 등 1,000여명이 참여해 ‘행복한 김장 나눔행사’를 열었습니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삼성토탈의 일년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특히 직원 부인들이 행사 준비팀을 꾸려 1년 동안 전남 해남(배추), 충남 청양(태양초 고춧가루), 충남 서산(육쪽마늘) 등 전국을 다니며 최고의 재료를 고르고, 행사에서 담근 2만 여 포기는 이 회사가 생산하는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친환경 용기에 정성스레 담아 지역 내 복지재단, 요양원, 소외계층 등에 보냅니다.

특히 ‘김장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삼성토탈의 해외 거래선 관계자들은 회사 초청으로 참여해 왔는데요. 워낙 참여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 다 초청을 못하다 보니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는 항공료, 숙박비를 직접 부담해서라도 부부동반, 가족동반으로 찾아올 만큼 인기있는 ‘한류 행사’가 돼가고 있는데요. 김장 축제는 신선하다는 평가와 함께 삼성토탈의 ‘소프트 경영’ 대표 사례로 꼽혀왔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서산 공장 직원이나 서울 본사 직원들이 모여 가족들과 함께 양념 버무리고 김치 속을 넣으며 자연스레 단합을 다지게 된다”며 “김장행사가 일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여기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삼성토탈 직원들은 김장행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26일 회사 주인이 바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삼성그룹이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화학, 방위산업 분야 4개 계열사를 묶어 한화그룹에 매각한 데 따라 '파란색(삼성그룹 상징색)'이 아닌 '오렌지색(한화그룹 상징색)' 식구가 돼야 할 처지입니다. 27일 삼성토탈 직원 A씨는 "다들 멘붕 상태에서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며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허탈해 했습니다.

삼성 직원들은 국내 재계 1위 삼성을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합니다. 삼성이 다른 회사를 인수했으면 했지 인수 당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생 '삼성맨'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 삼성이 회사를 4개씩이나 한꺼번에 매각을 한 것은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직원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A씨는 "다른 계열사 동기들,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들 모두 위로를 하면서도 자신들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며 "그룹의 구조 개편이 워낙 빠른 속도로 큰 폭으로 진행되다 보니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를 빼고는 한 치 앞을 모르게 됐다고들 한다"고 전했는데요. 삼성그룹 측도 다른 계열사 직원들의 충격과 동요를 의식한 듯 빅딜 소식을 확인하는 언론에게 "이번 딜은 한화 김승연 회장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22일 충남 서산 서령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토탈의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서 참여한 손석원(맨 오른쪽) 사장과 프랑스 토탈사의 프란시스랏츠(맨 왼쪽) 수석부사장이 함께 김장을 담그고 있다. 삼성토탈 제공
22일 충남 서산 서령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토탈의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서 참여한 손석원(맨 오른쪽) 사장과 프랑스 토탈사의 프란시스랏츠(맨 왼쪽) 수석부사장이 함께 김장을 담그고 있다. 삼성토탈 제공

사실 삼성토탈은 최근 화학업계의 '노른자위'로 꼽혔습니다. 한화 이전에도 롯데케미칼이나 SK이노베이션도 인수를 적극 고려하거나 실제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한화가 인수를 하게 됐습니다. 특히 롯데케미칼 입장에서는 '닭 쫓다가 지붕쳐다보는' 상황이 돼버려 굉장히 허탈해 했다는 후문입니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삼성토탈을 인수함으로써 기존 업스트림 중심의 사업구조를 다운스트림까지 확장할 수 있다"며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업스트림은 석유화학 공정의 첫단계인 나프타분해를 통해 에티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만드는 공정과정을, 다운스트림은 기초유분을 다시 분해해 만드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제품을 만드는 공정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한화가 삼성토탈을 품어서 얼마나 이득을 낼 지에 대해 물음표를 달고 있습니다.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한화가 삼성토탈을 인수하게 된 데는 역시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재계의 또 다른 소식통은 "과거 대한생명 인수를 통해 재미를 본 것도 있고, 늘 그룹의 몸집을 키우는 데 큰 관심을 가져온 것이 김승연 회장"이라면서 "방산이나 화학모두 한화의 뿌리 기업이라는 상징성 있고 이 분야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괜찮은 판단이라고 보이지만 사업적으로 얼마자 시너지를 낼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재계의 소식통은 김승연이 1조9,000억원이라는 되는 큰 돈을 던진 것을 두고 '자식 사랑'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김 회장이 세 아들을 아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처음으로 언론에 노출된 장소가 다름아닌 지난달 승마 국가대표 선수였던 셋째 아들 김동선(25)씨가 출전한 아시아경기대회 경기장 응원석이었습니다.

최근 동선씨는 승마선수를 그만두고 지난달부터 한화건설의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고, 둘째 아들 동원(29)씨는 3월 입사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에서 근무 중입니다. 여기에 장남 동관(32)씨는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이끌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세 아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게 됐기 때문에 김회장으로서는 아들들에게 사업이나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세 아들 모두가 섭섭하지 않게 골고루 챙겨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회사나 여러 사업 분야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편 김승연 회장이 삼성 계열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김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관계가 새삼 화제입니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김 회장은 평소 이건희 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고 두 사람 앞에서는 큰 절도 서슴없이 한다고 들었다"며 "그런 김 회장이 삼성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는 데서 상당히 고무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빅딜을 '윈-윈'이라고들 평가하지만 그 보다는 빠른 속도로 구조 개편을 진행 중인 삼성은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할 수 있는 실리를 챙기고, 한화는 그룹의 몸집을 키워 재계 서열 9위로 뛰어오르는 동시에 재계 1위 삼성의 계열사를 사들였다는 과시 효과를 얻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삼성토탈의 김장문화축제가 내년 가을에 또 열리게 될까요? 삼성과는 다른 그룹 문화를 지닌 한화 식구가 돼서도 이 행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 집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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