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호군 유괴·여대생 청부살인 등 미제 사건·사회 부조리 파고들어
스토리텔링과 재연, 영상 연출 탁월… 시사고발 프로 마지막 자존심으로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가 1,000회 속에 차곡차곡 담겼습니다. 첫 방송 후 2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SBS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5일 1,000회를 맞는다. 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더 브릴리에 예식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민인식 SBS 교양국장은 이 같이 프로그램의 의미를 평가했다. 7년 5개월째로 최장수 진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김상중은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 제작진과 공감해준 시청자 덕에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첫번째 진행자로서 ‘그것이 알고 싶다’와 따로 뗄 수 없는 문성근은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감회를 밝혔다. 이들과 함께 정진영도 간담회에 참석해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프로그램이지만 내 인생의 든든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SBS가 개국한 이듬해인 1992년 3월 ‘이형호군 유괴사건-살해범의 목소리’편으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이후 각종 미제 사건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혹과 사회적 부조리를 파고들었다. 형제복지원,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사건, 군대 내 잔혹행위 등 사회적 약자나 억울한 사연의 피해자들을 대변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5월 방송된 ‘죄와 벌-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은 이 프로그램의 시사고발적 성격과 영향력을 드높인 사례다. 2002년 여대생을 청부 살인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기업의 회장 부인이 허위진단서를 이용해 형 집행정지를 받고 대형병원 특실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며 시청자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방송 직후 해당 기업의 온라인 서버가 다운됐고 불매운동 사이트까지 생겨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자 검찰은 형 집행정지를 취소했고 허위진단서를 쓴 의사도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친숙한 연기자의 진행과 흡인력 있는 재연 영상, 한편의 추리극을 보는 듯한 구성으로 방영 초기부터 인기를 끌었다.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재연, 영상 연출 등으로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23년여 간 이어진 ‘그것이 알고 싶다’는 국내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꼽힌다.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이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3년 시작한 맏형 격인 KBS ‘추적60분’은 이번 주 1,170회를 앞두고 있지만 최근 1~2%대의 굴욕적인 시청률로 체면을 구긴 상태고,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사건’ ‘광우병 파동’ ‘4대강 이슈’ 등 굵직굵직한 주제로 PD저널리즘의 교과서로 불리던 MBC ‘PD수첩’ 역시 지난해 MBC 교양제작국 해체 등 내홍을 겪으며 제 역할을 못 하는 형편이다.
한편으론 납치 성폭력 살인 사이비종교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아이템을 다루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이 프로그램이 1994~2002년 다룬 주제를 분석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이 취급한 주제는 범죄ㆍ재판(23.4%)이었고 복지(13.7%), 건강(10.2%)이 뒤를 이었다. 정부정책과 경제는 각각 0.9%, 2.9%에 불과했다.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달 2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탐사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 세미나에서 “민감한 정치사회적 현안을 다루기보다 주로 공분을 일으키는 미시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민 국장은 “성역 없이 소재를 찾지만 스토리텔링형 탐사보도 성격에 걸맞게 미스터리 구성을 살릴 수 있도록 고민한다”며 “흥미를 살리면서도 치밀한 논리 구성으로 사실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자는 게 제작진의 다짐이자 고민”이라고 밝혔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