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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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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2호선

입력
2016.06.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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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호선을 탔다. 기분이 이상하다. 18일엔 강남역을 갔다. 10번 출구 앞엔 몇 송이 꽃과 포스트잇 스무 장 정도가 붙어있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떨어지는 포스트잇들을 주웠다. 몇몇이 제각기 손에 테이프를 들고 바람에 떨어진 것들을 다시 붙였다. 일행도 아니었다.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냐고. 그는 트위터에서 소식을 봤다고 했다. 사람들이 붙인 추모의 포스트잇이 바람에 떨어지고 있다고. 그래서 강남까지 테이프를 사 들고 그는 혼자 그 곳에 왔다. 그 곳에 있었던 글귀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너는 나야.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네가 아니라 내가 죽을 수도 있었어.’

또 2호선을 탄다.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구의역에 열차가 선다. 그 역에는 승강장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주저앉아 운다. 열아홉의 스크린도어 수리공이 죽었다. 규정상 2인 1조로 근무를 나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뒤에서 열차가 오는지 봐줄 사람이 없었다. 경영 효율화. 인력 부족. 같은 이유들로 벌써 사 년 새 세 번째 사고다. 돈 대신 사람으로 때웠을 것이다. 안 되는 일들을, 위험을, 사고를, 돈 드는 일을 하느니 사람이 감수하라고 알아서 하라고 해왔을 것이다. 또 이 곳에 하얀 꽃이 놓였다. 죽은 수리공의 어머니가 그 앞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한다. 유리 위에 포스트잇 수십 장이 붙는다. 너의 죽음은 ‘네 잘못이 아니야’.

길고 지난한, 거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느낌이다. 색을 바꿔가며 수많은 추모의 리본이 생겨난다. 사람들의 페이스북 프로필이 때마다 바뀐다. 노란 리본과 보라색, 붉은색 리본, 추모의 메시지들. 너는 나일 수도 있었다고, 너의 죽음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다는 걸 몸으로 마음으로 절절히 느낀다. 누군가의 영정사진을 보며, 리본을 두른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마음. 이것은 구조의 문제다.

‘나’의 자리에서 온전히 ‘너’에게 나를 대입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추모가 전사회적인 공감을 일으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이것을 징후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곪은 부분을 알고 치유하려는 자기 면역 체계의 작동.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갈등 상황을 치유해야 하는 주체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는 이미 있었다.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 군은 주말이면 서울 메트로 앞에서 고용 불안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실에 대해 지난해 언론은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서초동 노래방 살인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아우성에 대한 응답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자. 정부 여당이 하는 일이라곤 강남 살인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조현병 환자를 강제 입원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추모와 아우성. 이런 경험들 후에 우리에게 남는 건 무엇이 될까 궁금하다. 결국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허무함이 남을까. 혹은 목소리를 내면 변하는 것이 있다는 신뢰가 남을까. 저신뢰 사회, 불신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지금까지 아낀 모든 ‘비용’을 넘고도 남을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죽음 앞에서, 그 반복을 보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불신하게 된다.

오늘은 홍대로 취재를 간다. 2호선을 또 탔다. 홍익대에 전시된 일베 관련 조형물을 어젯밤, 누군가 부쉈다고 한다. 강남역 추모 현장에 갔던 지인은 요즘 일베를 열심히 본다. 그는 추모 현장에서의 자신을 찍은 사진이 일베에 올라오고, 온갖 모욕의 말이 붙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요즘 일베를 보고 그 증거를 모은다. 아. 요즘은 자꾸 2호선을 탄다. 이 순환선은 어디로 갈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까.

조소담 비트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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