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등록 : 2018.03.01 13:41
수정 : 2018.03.01 13:42

[천종호의 판사의 길] 꼰대 공동체와 예수 공동체

등록 : 2018.03.01 13:41
수정 : 2018.03.01 13:42

지난 8년 간 소년보호재판을 맡았다.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재판을 받는 아이들과 관련하여 두드러진 변화 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정신ㆍ심리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우울증, 발달장애, 품행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고, 충동이나 분노 조절장애를 겪는 아이들도 종전보다 더 자주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을 것이나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것이 바로 가정이나 이웃과 같은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사회공동체의 해체와 그로 인한 ‘애착손상’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비행청소년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해체된 가정과 사회공동체의 회복이라 하겠다.

그런데 중간 단계의 공동체의 회복에 대해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거나 알레르기 반응까지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사회공동체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면들, 특히 가부장권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들이나 편견과 편협함의 전초 기지와 같은 모습들 때문이다. 부정적인 모습의 공동체를, 품격 없는 표현이겠지만 최근 유행되고 있는 말로 하면, ‘꼰대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다. ‘꼰대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술하기보다 그와 정반대의 공동체의 모습을 대비해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한 공동체 중 하나로 ‘예수 공동체’를 들 수가 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는 생애가 불과 33년밖에 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고작 3년이다. 예수가 그 3년간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만든 공동체를 ‘예수 공동체’라고 하자. 이 공동체가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거니와, 기독교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예수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아동친화적이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공동체는 어른과 아동이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되는 공동체다.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 아동에 대한 보호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는 아동을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요구한다.

둘째, 여성친화적이다. 예수 공동체는 12명의 제자들이 핵심이었으나, 실제로 여성들이 예수 생존 전후에 공동체의 존속에 커다란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예수 자신도 여성친화적인 모습을 자주 연출하였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간음을 하다 발각된 여성을 데리고 온 무리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한 일화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사회적 약자 존중의 공동체다. 예수 공동체는 불치병자, 장애인, 고아와 과부, 외국인 등 당시 사회에서 약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 편에 먼저 서려 했던 공동체이다. 길을 재촉해 가는 중에도 언제든지 멈추어 서서 그들의 애환을 듣고 해결해 주고자 하였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었지만 정작 예수 자신은 평생 잠 잘 곳조차 없었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할 때 마지막 소유물이었던 옷마저도 로마 병사들에게 빼앗겼다. 부양할 가족도 두지 않았고, 후계자를 자신의 핏줄이나 형제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넷째, 열린 공동체다. 예수 공동체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는 누구든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 중에는 민족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던 세금징수원도 있었고, 예수를 처형하는데 앞장 선 단체에 소속된 사람도 있었으며, 극단적인 민족주의자가 있었는가 하면 심지어 스승을 정적에게 팔아넘긴 사람도 있었다. 또한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감시하거나 동향을 파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감시 당했으며 결국에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의 배신을 당해 십자가 형벌을 받게 된다.

다섯째, 탈권위주의적이다. 예수는 스승의 지위에 따르는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대야에 물을 떠와 쪼그리고 앉아 제자들의 냄새 나는 발을 씻겨 줄 정도로 평등한 인간관계를 즐겼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여성, 장애인, 외국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경제 양극화로 인한 사회구성원 간의 배타적 차별의식, 공권력을 이용한 사익 추구와 블랙리스트를 통한 반대세력에 대한 과도한 견제, 미투운동(#MeToo)으로 드러난 사회에 만연한 권력형 성폭력, 대형 종교단체의 부자(父子)세습 등 예수 공동체의 모습과는 한참이나 먼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이른바 ‘꼰대 정신’이 깊숙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러한 사정이라면 애착손상 등의 사회병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이나 사회공동체를 회복하자고 감히 말하기 어렵다.

본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마음의 위로와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예수 공동체와 같은 공동체의 부활이 시급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작금의 청소년비행 문제를 비롯한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가기가 어렵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문무일에 힘 실어준 검사들… 검란 계기로 내부결집 ‘반전’
“단계별 비핵화”… 미국, 북한과 접점 맞춰간다
얼마나 아팠을까… 구두 속에 꽁꽁 숨긴 판매직 노동자의 일그러진 발
“피팅모델보다 심해” 코스프레 업계도 ‘미투’
성범죄자 알림e 이용자 뚝뚝 떨어지는 까닭
[정민의 다산독본] 다산의 제자 교육법… 책을 통째로 베끼며 ‘내 것’으로 만들게 해
“다섯 살에 이민… 영화 속 벤처럼 늘 외로움 느껴”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