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한국문학 세계화는 정서를 번역할 수 있어야

입력
2017.08.04 15:36
0 0

영어는 참 논리적인 언어이고, 담백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로 여러 문장을 통해 표현해야 할 때 영어로는 한 문장으로 쉽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가 많다. 영국에 사는 나에게 영어는 이제 내게 숨을 쉬게 해주는 공기와 같은 언어이다. 그렇지만, 모국어가 한국인 나는 우리말을 한마디도 안 한 날이면 정말로 말이 고프다. 왜 그럴까? 할 말은 영어로 다 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언어적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이에 대해서 연구도 하였고, 이 문제와 관련해서 ‘화용적 통사론(Pragmatic Syntax)’이란 책도 최근 썼다.

내가 내린 결론은, 말이란 것이 결코 정보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공허함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우리말은 참으로 구수하고 정겹다. 나는 고향이 충청도인데, 어디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사투리에 대해 친근함을 갖는다. 우리말은 문장의 끝에 나타나는 어미가 상당히 다종다양하다. 어떤 어미를 쓰는 가에 따라 의미 차이가 천지 차이이다. 사실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상황에 적절하게 어미를 찾아 쓰는 것이다. 영어로 “Would you like to drink coffee?” 하면 “Yes, please.” 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커피 드실래요?” 하고 물어본다고 “예, 커피 드실래요.”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 커피 마실래요” 이렇게 해야 한다. 남에게 말할 때와 자기가 대답할 때가 다르고, 주위 사람들과 상황을 잘 살펴야 어떻게 말할지가 결정된다.

말끝에 ‘요’를 붙이고 안 붙이고의 한 문제만 생각해 보자. ‘요’는 공손 어미로 불리지만, 사실 친한 사람에게 ‘요’를 계속해서 붙이면, 그 사람은 오히려 상대가 자신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으로 생각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처음 본 상대가 묻지도 않은 채 말을 놓아 버리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게 될 것이다. ‘말 놓기’의 실패가 다툼을 일으키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에게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우리 문학의 영어 번역이 요즘 영미권에서 주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번역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이 어미와 어투의 번역이다. 우리말은 영어의 “Come here!” 에 해당하는 표현을 “이리와.” “이리로 오세요.” “이리로 와주세요.” “이리로 와주실 수 있으신지요.” 참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가 있을 뿐 아니라, 각각의 뉘앙스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뉘앙스를 표현해 줄 수 있는 기제가 전혀 없는 언어로 표현을 하려니,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몇 년 전 피천득 선생님이 번역하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으며 그 아름다운 번역에 감동을 받았다. 영어에는 다양한 마음과 태도를 보여주는 우리말 어미가 없다. 이 기능을 명사가 주로 담당한다. 그런데, 피천득 선생님이 소네트의 미학을 아름다운 우리말 어미로 참 적절하게 재해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문학 번역은 정보의 번역이 아니라 정서의 번역이다. 정지용의 향수를 번역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특정한 문화에 속한 단어 번역이 어려운 것도 있으나, 그 감동의 마음을, 그 마음 그대로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번역의 정확성이 중요하겠지만, 원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정서 번역을 놓친다면, 우리 문학은 결코 세계인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