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충돌 교문위 파행 이어지자 예산소위가 먼저 심의 기현상도
예결위 통상 절차 생략한 채 기재부 차관ㆍ여야 간사 3자회의
“정치권 요구 전달한 뒤부터는 기재부가 하고 싶은 대로 끝낸 셈”
올해 국회의 예산 심사 과정은 복마전과도 같았다. 여야 모두 쟁점 법안과 예산안을 연계하면서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무력화했고 예산안이 결정되는 과정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여야 정쟁으로 일부 상임위가 가동된 가운데 예결위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예산이 먼저 논의되고 결정되는 비정상적인 경우도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실세 의원들은 예결위 간사에게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쪽지’로 찔러 넣는 구태가 반복됐다.
공식 증액 요청도 없이 ‘0원’ 짜리가 수억 원 짜리로 둔갑
4일 한국일보가 국회 예결위 예산조정소위 심의 자료와 3일 국회를 통과한 2016년도 예산안 비교 분석을 통해 확인한 쪽지예산은 모두 53건으로, 개별 규모는 2,000만~200억원까지 다양했다.
이 중 예산소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던 항목이 수 억원짜리 사업 예산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대부분 여야 의원들의 찔러넣기 식 쪽지예산이었다.
울산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은 예비 타당성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35억원의 건립 비용이 예산소위 심사 과정에서 먼저 책정됐다. 인천 아암로 해안도로 확장(30억원), 경기 안산 단원경찰서 와동파출소 건립(21억4,800만원), 충남 내포ㆍ해미 세계청년광장 조성(10억5,000만원) 등도 당초에는 계획에 없던 예산 항목이었다. 이밖에 전남 목포ㆍ신안의 다도해 국제요트대회(5억원), 전남 광양 섬진강 뱃길복원 및 수상레저 기반 조성(4억원), 전북 고창 무장읍성 관광거점 사업(4억원), 강원 삼척 이사부 역사문화 창조사업(4억원) 등 지역 특성화 문화 사업도 막판 예산 확보에 성공했다.
쪽지예산의 부활은 국회 예산소위 가동이 지연될 때부터 예견된 바였다. 여야 원내대표가 규정을 어긴 채 소위 인원을 각각 1명씩 증원하려던 꼼수를 새누리당 소속 김재경 예결위원장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특히 막판에는 여야가 쟁점 법안과 예산안을 연계해 둔 채 주고받기 식 협상을 벌이면서 예산 심사는 정상 가동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교육문화위원회의 경우 여야가 관광진흥법 등 쟁점 법안을 두고 사실상 가동이 중단되면서 파행을 부추겼다. 때문에 일부 예산의 경우 교문위에서는 전혀 논의도 되지 않은 채 예산소위가 먼저 심의에 돌입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예산소위 관계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예산, 누리과정 예산 등 여야가 맞붙은 이슈가 많아 상임위 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고 해명했다.
정부 눈치 보는 깜깜이 예산 심사 과정 재검토 목소리도
심지어 예산 증액을 다룰 예산소위와 소소위원회 심사도 생략한 채 기획재정부 차관과 여야 예결위 간사의 ‘3자 회의’로 곧바로 넘어갔지만 이 회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야당 관계자는 “여야가 각자 요구 사항을 기재부에 전달한 뒤부터는 기재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끝낸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예산 심사 과정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국회 관계자는 “미국은 예산 증액 사안이 일반 법률안이라 의회가 전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행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지금처럼 막판까지 정부 눈치를 보며 깜깜이 심사를 하느니 차라리 증액은 상임위에서 다루고, 예결위는 삭감만 다루는 방식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경 예결위원장도 “지금 방식이면 내년에도 파행이 불 보듯 뻔하다”면서 “자동부의가 예산안 처리 안정성은 높였지만, 국회 심의권을 무력화했다”고 비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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