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25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권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직권상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를 집요하게 흔든 결과물이다. 불출마 카드로 배수의 진을 친 정 의장은 여당의 선진화법 개정안은 “다수당 독재허용 법안”이라고 수용불가 입장을 재천명한 뒤 신속처리 안건의 심의 시한을 현행 330일에서 75일로 단축하는 내용의 추가 중재안을 제시했다.
정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 거취에 대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을 막겠다”며 “지역구인 부산 중ㆍ동구는 물론이고, 동서화합 차원에서 권유가 있었던 호남 등 다른 지역에 출마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20년 동안 의정활동을 하며 많은 은혜를 입은 새누리당을 저버리는 일 역시 결코 없을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된 안철수 신당 입당설도 일축했다.
앞서 ‘국민의당 입당설’, ‘호남 출마설’을 흘리며 정 의장 흔들기에 나선 여권은 이날도 불출마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당 지도부는 물론 초선 소장파 의원들도 나서 정 의장을 압박했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망국법인 선진화법을 개정할 수 있는, 법에 근거한 절차를 모당(母黨)이 요구하는데, 이를 다른 이유로 지연하고 거부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ㆍ김태호ㆍ이인제 최고위원도 공개 발언을 통해 정 의장의 직권상정 수용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초ㆍ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에서는 “(선진화법 직권상정 거부가) 정 의장의 소신이라면 불출마 선언을 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이날 불출마 선언으로 결기를 드러낸 정 의장은 여당이 요구하는 선진화법 개정안은 직권상정 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는 “여당 주장은 너무나 위험하고 과격한 발상”이라며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원하는 법안을 모두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다수당 독재허용 법안”이라고 강도 높게 성토했다. 그는 “우리 국회를 또다시 몸싸움이 일상화되는 ‘동물국회’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법안처리가 시급하더라도 이런 식의 극약처방으로 의회민주주의 자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의 핵심은 재적 과반수 요구로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해 75일 이내에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급한 민생ㆍ경제 법안이 장기간 국회에 발이 묶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다수당이 제도를 악용할 수 없도록 ‘국민 안전에 대한 중대한 침해, 국가 재정ㆍ경제 상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명백한 안건’으로 신속처리 대상을 제한했다.
나흘 전 제안한 1차 중재안에서 신속처리 안건 지정 요건을 재적의원 60% 이상 요구에서 과반 요구로 완화하자는 제안을 여당이 거부하자 기존 제안에 한 가지 방안을 더 추가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추가 중재안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안과 병합해 논의해보겠다”는 다소 진전된 반응을 보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다수의 전횡 가능성을 높인다”며 수용 불가입장을 밝혔다.
앞서 정 의장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논란과 국회법 파동 등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고비 때마다 새누리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뿌리치며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낸 덕에 ‘뚝심의 조율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친정인 여당에서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상태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의장은 이날 “국회의장이 무소속인 이유는 여ㆍ야를 넘어 불편부당하게 행동해 상생의 정치, 합의의 정치를 이끌라는 데 있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저 주어진 일을 하고 있는 국회의장을 더 이상 흔들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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