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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석 기자

등록 : 2018.05.06 14:00
수정 : 2018.05.17 14:04

할머니 3명을 차로 친 운전자… 주머니엔 돈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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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 2018.05.17 14:04

수사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의심은 경험에서 축적된 감(感)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냄새’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수사에 앞서 대부분 경찰은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냄새를 잘못 맡은 건 아닐까, 헛물만 켜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건 아닐까, 괜한 의심에 쏟아질 비난을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움에 자신의 감과 의심을 돌이켜보게 된다.

2008년 11월. 서울 서대문경찰서 이대우 강력2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1년 반 동안이요.

교통사고 세 건이 일어난 게 1년 반 동안이에요.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는 보험사기특별조사관(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이었다. 교통사고 보험금을 책정하고, 혹시나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인지 여부를 조사하는 역할. 일종의 제보였고, 수사를 해보겠냐는 제안이었다.

SIU는 충남 보령과 서천군 일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3건을 언급했다. 한 남성이 1년 반 동안 일으킨 사고였는데, 공교롭게도 피해자는 모두 60대 후반, 70대 초반 할머니였다. 두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중상을 당했지만, 법원 판결에 따라 ‘단순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결론이 난 사건이었다. “단순 교통사고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뭔가 미심쩍지 않습니까?” SIU가 넌지시 말했다. “의심이 가진 하지만 보험사에서 그걸 밝혀낼 역량이 없잖아요.” 이 팀장은 그 순간 귀가 솔깃했다고 훗날 털어놨다.

분명 냄새는 났다. 3년 전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면 형사합의지원금이 짭짤하다”는 말을 듣고 70세 경비원을 차로 친 살인범을 잡은 기억이 떠올랐다. “관할도 아닌데, 이미 종결된 사건을 잘못 건드리는 건 아닌가 잠깐 고민했지만 뭐 물러설 이유도 없다고 봤어요.” 법원 판결을 뒤집을 자신도 있었다.

우선 사건 기록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문제가 된 운전자는 충남 서천군에 사는 김모(당시 46)씨였다. 화려한 전과가 눈에 들어왔다. 사기는 물론 이런저런 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린 게 족히 20번. 대출중개업 사무실을 열었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다.

그런 그가 2006년 10월부터 자동차운전자보험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보험사 상담센터에 전화해 “보험을 두 개 들어도 중복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는 기록. 이를 시작으로 이듬해 2월까지 김씨는 운전자보험을 3개나 가입한 것으로도 나왔다. “보통은 종합보험 정도만 들기 마련인데 여러 개를 연달아 가입한 것 자체가 특이하고, 뭔가를 노린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볼 수 밖에요.”

첫 사고는 2007년 5월 14일 오후 2시15분쯤 충남 보령시 주산면에서 발생했다. 논밭 사이로 곧게 뻗은 왕복 1차선 포장도로. 노인들이나 가끔 눈에 띄는 한적한 시골도로에 갑작스레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도로 위를 걷던 김모(74) 할머니 뒤를 덮친 티코 승용차. 김 할머니는 티코 앞 우측 범퍼에 부딪혀 도로 옆 논두렁으로 튕겨져 나갔고, 그 자리에서 다발성장기손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운전자 김씨는 사고가 나자 곧바로 자수했다. “실수로 행인을 쳤다”고 했다. “광고 전단을 붙이려고 가던 길이었는데 왼편 논에 있는 컨테이너박스에 잠깐 눈을 돌리는 사이 갑자기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고 전 7m 정도 앞에서야 피해 할머니를 발견했고 급제동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게 김씨 진술이었다.

김모 할머니가 2007년 5월 14일 티코 차량에 치여 사망한 충남 보령시 도로. 2㎞ 가까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 제공

피해자가 고령이라는 점, 가해자가 잘못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자백하고 있다는 점에 유가족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 경찰도 유가족과 이미 합의를 마친 김씨를 단순 교통사고에 따른 과실치사범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김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김씨 주머니에는 돈이 쌓였다. 보험사로부터 타낸 형사합의지원금만 6,000만원. 김씨는 “가진 돈이 없어 그런데 좀 봐주시면 안 되겠냐”며 유가족에게 합의금으로 300만원을 제시했다가 항의를 받고 500만원을 건넸다. “고인 묘소에 자주 찾아 뵙고 사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김씨가 묘소를 찾거나 유가족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두 번째 사고는 첫 사고 발생 10개월 후인 2008년 3월 4일 일어났다. 김씨는 그새 운전자보험을 하나 더 계약했다. 충남 서천군 장항면에 있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 교차로를 건너던 69세 최모 할머니가 액센트 승용차에 치어 뇌진탕 등 전치8주 중상을 입었다. 이번에도 김씨는 스스로 경찰을 찾았다. “교차로를 건너가기 위해 반사경을 보는 순간, 갑자기 도로를 건너는 할머니를 봤다”는 게 김씨 진술이었다. 1년 전과 똑같은 ‘실수’였고 ‘불가항력’이었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게 있었다면 김씨 주머니 사정이었다. 형사합의지원금은 사망사고와 아닌 경우가 차이가 컸다. 이때 김씨에게 지급된 건 1,000만원이 채 안 되는 돈. “아마 그래서 세 번째는 더 큰 한 방을 노렸을 겁니다.” 이 팀장이 분석했다.

두 번째 사고 발생 직후 보험을 모두 해지했던 김씨는 2008년 8월 운전자보험 5건을 새로 계약했다. 보험사에 전화해 “형사합의금으로 나오는 돈이 얼마냐”고 묻기도 했고, “보험 만기 시 환급이 아니라 사고 시 보장만 받는 보험으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보험금을 최대한 많이 받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2008년 9월 5일 오후 충남 서천군 비인면. 홀로 해안도로를 걷던 박모(66) 할머니가 김씨가 몰던 산타페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이번에는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이유를 댔다. 피해 할머니는 다발성늑골골절로 사망. 김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집행유예 다시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는 여유까지 보였다. 법원은 역시나 김씨에게 금고 4월에 벌금 4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에겐 형사합의지원금이 4,000만원이나 지급됐다. 모든 게 김씨가 바라던 대로였다. 이 팀장은 “세 번째 사고 후에도 보험사마다 ‘형사합의금이 얼마나 나오냐’고 상담하면서 새로 자동차운전자보험에 가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이 보기에 김씨는 ‘우연한 사고로 위장해 노인을 두 사람이나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틀림 없었다. 우선 김씨는 매달 20만원 정도씩 하는 보험료를 낼 형편이 안 됐다. 2009년 3월까지도 김씨는 3,000만원 정도에 달하는 채무에 전기요금과 수도요금도 못 낼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고 목격자 확보가 어려운 한적한 도로에서 상대적으로 합의가 쉬운 노인만을 대상으로 한 사고라는 점 역시 의도적인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됐다. 확신을 가진 이 팀장은 김씨를 체포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 팀장이 제시한 시나리오를 전면 부인했다.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였다.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할머니들을 친 것이다”거나 “보험광고를 보고 여러 보험에 가입했다”는 등. “모든 게 실수였고 우연의 일치”라는 진술로 일관했다.

죄를 입증할 단서가 필요했다. 모의실험을 통한 현장검증을 해보기로 했다. 마네킹과 사고에 등장했던 동일 차종의 차량을 준비했다. 1차 사고와 3차 사고가 일어난 도로변은 각각 2㎞, 300m 이상 직선상으로 쭉 뻗은 도로로 별 다른 장애물도 없었다. 보행자의 행동이 한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곳. 2차 사고가 발생한 주택가도 “교차로 반사경을 쳐다보다 보행자를 놓쳤다”는 김씨 진술과 달리 전방시야가 좋아 반사경과 보행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피해자들을) 못 볼 수가 있지?”

스키드마크도 재현했다. 차량이 급제동할 때 길 위에 남게 되는 검은 타이어 자국. 이 팀장은 사고 당시 스키드마크와 동일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속도와 제동 시점을 달리하면서 수 차례 실험을 반복했다. 1차 사고 때는 시골도로를 시속 60~70㎞로 달리다 사고 이후 14.7m나 차를 더 몰고 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3차 사고 때는 해안도로를 시속 70㎞로 달리다 사고 이후 34.8m나 더 진행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충분히 보행자를 피할 공간과 시간이 있었으면서도 부딪힌 이후에야 브레이크를 그것도 서서히 밟아 제동했다는 뜻이었죠.”

피해자들이 튕겨나간 방향도 일반적인 사고로 설명될 수 없었다. 세 사고 모두 차량 우측 범퍼가 파손됐다. 일반적인 운전자라면 도로 우측의 보행자를 발견할 경우 좌측으로 핸들을 꺾어 피하기 마련인데, 김씨는 핸들을 꺾지 않았다. “이제 됐다!” 이 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09년 9월 30일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에서 김씨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을 징역 12년에 처하고, 이에 보험금을 허위로 수급한 사기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더해 총 15년을 선고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으로 정부는 2009년 10월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형사합의금 중복 지급을 막도록 하는 내용을 운전자보험 표준약관에 새로 담았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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