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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관광 케이블카, 세계유산 한라산에 물어보라

입력
2017.06.3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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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영실에 오락시설과 숙박시설 설치계획을 알리는 공사안내판(1977년)
한라산 영실에 오락시설과 숙박시설 설치계획을 알리는 공사안내판(1977년)

최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허가 결정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문화재위원들이 5개월 동안 조사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케이블카 사업 불가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뒤집어 문화재위원회의 존재가치를 부정했다는 이유다.

관련 기사를 보면서 예전의 한라산국립공원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1968년 제주도 당국이 산악관광을 통한 지역경제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한라산에 케이블카 시설을 추진하자 당시 문화재위원회 제2분과 위원들이 총사퇴를 내걸고 허가철회를 교통부에 요구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들은 한라산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온대, 난대, 한대식물이 분포하는 곳으로 세계자연보존위원회에서도 ‘한라산의 자연은 세계자연학계의 가장 귀중한 보고’라 평가했다고 압박했다. 또 세계자연보호학회지가 ‘세계의 자연연구 공원으로서 절대로 현상을 파괴하거나 변경해서는 안 될 자연학계의 보고’로 규정했다며 버텼다.

한라산 도로 개설계획을 보도한 신문기사(1965년)
한라산 도로 개설계획을 보도한 신문기사(1965년)
백록담 남벽 정상부 복구 모습(1995년)
백록담 남벽 정상부 복구 모습(1995년)
백록담 북쪽 능선의 복구현황을 둘러보는 문화재위원들(2006년)
백록담 북쪽 능선의 복구현황을 둘러보는 문화재위원들(2006년)
백록담의 암벽상태를 조사하는 문화재위원들(2006년)
백록담의 암벽상태를 조사하는 문화재위원들(2006년)
백록담 산사태 현장을 둘러보는 문화재위원들(2006년)
백록담 산사태 현장을 둘러보는 문화재위원들(2006년)

이뿐만이 아니다. 문교부는 1966년 6월 22일 해발 700~1,000m 이상과 일부 계곡을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으로 가(假)지정했다. 제주도가 관광도로 개설계획과 수종갱신 사업을 벌이며 한라산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가지정 직후 제주를 찾은 문화재위원들은 ‘도 당국의 한라산 관광도로 개설계획을 반대하지 않으나 문화재위원회와 협의 없이 시행할 경우 실력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나아가 향후 국립공원법이 제정되면 한라산은 문화재보호법과 국립공원법 적용 대상이라며 이에 비협조적인 제주도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제주도와 일부 단체에서 개발사업과 상충되니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문교부가 1966년 10월 12일자로 이 지역을 천연기념물 제182호로 정식 지정해 한라산은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됐다.

이보다 앞서 1965년에는 제주도가 성판악∼사라악 구간 8㎞에 차도를 내고, 백록담까지 3m 폭의 등산로를 개설하고, 백록담 분화구 안에는 호텔을 신축하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역시 문화재위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1967년 제주도가 문교부에 한라산 케이블카 허가 신청을 냈을 때도 문화재위원들은 “한라산천연보호구를 유원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지정 구역 내에서의 케이블카 시설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며 케이블카 설치를 막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라산은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2002년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한라산이 품은 람사르습지도 물장올, 물영아리오름, 1100고지 습지, 동백동산 습지, 숨은물 뱅디 등 5개소에 달한다. 그야말로 세계인의 문화재로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계획대로 한라산에 차도가 개설되고, 백록담에 호텔이 들어서는 등 유원지화 했다면 오늘날 한라산의 이러한 위상은 불가능했을 게 뻔하다. 수백만이 찾는 유명 관광지일수는 있어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연유산은 결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당시 문화재위원들을 비롯한 지식인의 행동하는 양심이 오늘날 한라산의 가치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악관광 개발계획은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산악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당장 눈앞의 이득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행동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사례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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