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지난 1월 세계대회인 몽백합배 우승 이후 부담감 떨쳐…반상 운영도 더 정교해져
집권 기간만 벌써 4년 6개월에 육박한다. 사실상 절대권력이다. 경쟁자들과의 격차도 크다. ‘인간 알파고’로 거듭났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국내외 바둑계를 평정 중인 박정환(25) 9단 얘기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박 9단은 지난 4월 기준 랭킹점수 1만70점으로, 53개월 연속 국내 1위 자리를 지켰다. 이는 한국기원 집계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이다. 2위에 오른 김지석(29) 9단(9,819점)과 점수 차이 또한 크다. 누적상금 부문에서도 박 9단은 7억8,890만원으로, 2위 김 9단(1억8,270만원)을 크게 앞섰다.
박 9단은 최근 확실하게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국내용’이란 부정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탈피하면서 반상(盤上) 운영 능력까지 한층 더 안정됐다는 평가다. 박 9단은 지난 1월 중국에서 열린 ‘제3회 몽백합(夢百合)배 세계바둑 오픈 대회’에서 박영훈(33) 9단을 누르고 지난 2015년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우승 이후 3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목진석(38) 국가대표팀 감독은 “요즘 박 9단 바둑을 보면 예전 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것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9승4패(승률 82.61%)를 기록 중인 박 9단의 세계대회 성적은 6전 전승이다.
박 9단은 특히 ‘알파고’와 ‘딥젠고’ 등 인공지능(AI) 바둑 연구를 기력 향상의 주된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창의적인 수들을 과감하게 두는 AI를 분석하면서 실전에도 응용하고 있다”고 소개할 정도다. 지난 1일 일본 AI인 딥젠고에 패한 박 9단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 동안 딥젠고에게 많이 배워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딥젠고를 비롯한 AI 프로그램들을 통해 프로기사들이 많이 배우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9단은 올해 세계대회에선 ‘몽백합배’와 ‘월드바둑챔피언십’, ‘하세배’ 등에서, 국내대회 가운데 ‘크라운해태배’와 ‘KBS바둑왕전’ 등에서 모두 우승했다. 일부에선 이젠 라이벌인 중국의 커제(21) 9단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긍정적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9단은 ‘월드바둑챔피언십’과 ‘하세배’에서 커제 9단을 꺾으면서 상대전적에서도 8승6패로 앞섰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바둑에 대한 열정은 박 9단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꼽힌다. 실제 “박 9단은 식사와 화장실을 가는 것 이외의 대부분 시간은 바둑을 두면서 보내는 것 같다”는 게 프로바둑 기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초일류 반열에 올라섰지만 박 9단은 바둑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바둑 사활(死活) 문제나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선수들의 기보를 연구한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위기의식 역시 박 9단의 장점이다. 목 감독은 “다른 분야처럼 바둑도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조금만 나태해지면 뒤처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며 박 9단의 상승세 비결을 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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