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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귀어귀촌’ 21세기에 실현된 허생전

입력
2016.08.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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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사회적 억압과 착취, 가난으로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양민들에게 새 삶을 살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빈 섬으로 간다. 여기서 섬은 ‘뿌린 대로 거두고, 바다의 고기를 잡으며 소박한 삶을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기존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유토피아적 공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섬과 어촌은 허생전에서의 낙원과 얼마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1960, 70년대 경제개발시대를 거치면서 농어촌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도시화 현상을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 어촌도 고령화와 공동화 문제를 겪게 되었으며, 지난해에는 어가(漁家) 인구가 13만명에도 못 미칠 정도로 축소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의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 한계나 팍팍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어촌으로 돌아오는 유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귀어인(歸漁人) 수는 2013년 670명에서 지난해 1,073명으로 연평균 2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전남 신안군 출신 구모 씨는 젊은 시절 공항 보안요원으로 활동하다, 2010년 고향으로 귀어하여 친환경 새우양식으로 연간 수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귀어인이 중장년층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 30대 귀어인이 전체의 19.3%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이의 어촌행도 늘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구직난에 시달리는 젊은이, 도시보다는 바다에서 창조적 도전을 해보겠다는 청년층이 어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주목하고 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김모(36)씨는 2012년 양식영어조합에 법률자문으로 취직하고 갯지렁이 양식ㆍ유통 기술을 익힌 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식업을 시작해 지난해 순소득 7,500만원을 올렸다.

이뿐 아니라 어촌에선 어업 외에도 펜션, 식당,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 서비스업을 겸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는 우리 어촌이 유통, 가공, 관광 및 레저 등 다양한 산업을 아우르는 새로운 투자처로, 전 국민이 여가를 즐기는 미래형 복합산업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별다른 기술과 자본 없이 당장 바다로 가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는 실패를 맛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시행착오를 겪은 이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양수산부는 귀어귀촌 원스톱 서비스 제공을 위해 2014년부터 귀어귀촌종합센터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귀어귀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센터를 직접 방문하거나 홈페이지를 통해 ‘관심-준비-정착’ 순의 단계별 정보를 얻거나 귀어귀촌 관련 교육을 안내받을 수 있고, 귀어귀촌 홈스테이 등 체험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귀어귀촌 희망자의 창업이나 주택 마련을 위하여 세대 당 최대 3억5,000만원까지 낮은 금리로 융자도 지원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6월 경남 통영의 경상대학교를 제1호 귀어학교로 선정하였다. 내년 3월부터는 귀어학교에서 어선어업과 양식어업을 두루 체험하고 어촌에서 직접 실무도 경험할 수 있다. 그 전에라도 귀어 희망인이 선배 어업인의 배에 타 닻 놓는 방법, 풍향에 따른 운항방법 등 기술을 직접 습득할 수 있도록 창업기술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오늘날 귀어귀촌이 허생전의 유토피아를 쉽게 선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가지 정부 지원정책이 도움은 되겠지만, 최종 선택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어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꿈과 열정을 가진 이가 성과와 결실을 거둘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는 어촌이 좀 더 젊고 활력 넘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간다는 소식이 널리 회자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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