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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깨진 그릇은 돌아보지 않는다

입력
2017.10.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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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직업 상 의뢰인의 다양한 문제 상황을 같이 의논한다. 같은 문제 상황에서도 이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의뢰인 유형을 크게 worry(regret)형과 believe형으로 나눈다. 물론 그 중간 형도 있지만 이렇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대처하면 업무상 편리한 점이 많다.

우선 worry(regret)형은 후회와 걱정이 많은 형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 후회를 계속하며 과거에 매몰돼 있다. 의뢰인이 회사인 경우 대책회의를 하면서 사장은 직원을 계속 꾸짖기 일쑤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했길래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냐”며 호통 친다. 대책을 논의하다가도 계속 이런 질책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걸린다.

반면 believe형은 이미 발생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 덮어두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집중하는 형이다. “자, 벌어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이 난관을 타개하는 일에만 집중합시다.” 사장은 이렇게 선언한다. 회의 중에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좀 더 자신감 있게 의견을 내놓는다. 변호사로서 조언을 줄 때 후자(believe형)가 훨씬 편하다. 특히 리더가 believe형일 때 조직원들이 리더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우리 사장님은 위기 때 강하시구나.’

후한(後漢)시대 학자인 곽태(郭泰)는 덕행이 훌륭한 정인군자(正人君子, 마음씨 올바른 군자)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사람을 잘 알아보기로 유명했다. 그가 남긴 일화 중 하나가 바로 ‘타증불고(墮甑不顧)’다. ‘떨어진 시루(그릇)는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뜻.

어느 날 곽태는 우연히 길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독 장수였다. 독을 진 젊은이 뒤를 따라 걷던 곽태는 그의 독 짐에서 독이 하나 굴러 떨어져 바닥에서 깨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당연히 깜짝 놀라 독 지게를 세우고 안타까워하는 독 장수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 독 장수는 별다른 동요 없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던 길을 그대로 변함 없이 걸어가지 않는가.

오히려 놀란 것은 곽태. 젊은이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당신 짐에서 독이 땅에 떨어져 깨졌는데 어찌 그리 무심하도록 돌아보지도 않소이까?” 그 젊은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미 떨어져 독은 깨졌거늘 되돌아본들 깨진 독이 다시 붙기라도 한단 말이오?”

곽태는 그 젊은이의 심상치 않은 대답에 깜짝 놀라 그의 이름을 물어보니 그는 맹민(孟敏)이라는 사람으로, 아직 집안이 가난하여 학문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매일매일 독을 팔아 노모를 봉양하며 사는 무지한 사나이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곽태는 젊은이에게 글을 배워 보기를 권하니 젊은이는 쾌히 반색하기에 곽태는 그를 가르쳐 후에 큰 인물로 만들었다.

이미 일어난 일에 얽매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깝고 아쉬운 마음에 자꾸 되돌아봄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를 그대로 잊어버릴 수 있다면 이 또한 지혜의 영역이리라.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주는 채근담 구절을 소개한다. “성긴 대숲에 바람이 불어오되 바람이 지나가면 대숲은 소리를 머금지 아니하고, 차가운 연못 위로 기러기 날아가되 기러기 지나가면 연못은 그림자를 붙들지 않는다. 그와 같이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일고(事來而心始現 사래이심시현),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事去而心隨空 사래이심수공).“

이미 끝나버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으신지,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시는지. 뚜벅뚜벅 앞을 보고 걸어가는 우직한 독 장수 맹민을 떠올리며 마음의 끈을 다잡아 보시길 바란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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