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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유아 사교육, 해? 말아?

입력
2016.09.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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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다양한 유아 사교육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아기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는 가베, 오르다, 오감놀이 등등 문화센터 강좌들이 즐비하고, 좀 더 자라면 한글, 영어, 미술, 태권도, 발레 등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다양한 학원들도 눈에 들어온다. 아이의 지능은 어릴 때 결정된다며, 다양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고, 어릴 때 영어를 익히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하는 엄마들도 있다.

나는 첫째 아이가 두 돌 때까지 외국 생활을 했고, 귀국해서는 바로 어린이집, 유치원의 종일반을 보내며 워킹맘으로 일했기 때문에 유아 사교육을 접하게 할 기회가 없었다. 주변의 아이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신기한 교구들이 눈에 띄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학습지 광고지를 자꾸 받게 된다. 그러나 유아 사교육을 시킬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시킬 시간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 종일반 있다가 집에 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되는데, 퇴근한 엄마와 좀 놀다가 씻고 자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몇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에게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면서, 주말에 어린이 도서관에서 하는 미술 강좌를 한번 신청해 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두 번 나가다가 귀찮고 번거로워 그만두었다. 아이에게 발레복을 입혀 보고 싶은 엄마의 로망으로 둘째가 네 살 때 구청문화센터에서 하는 유아 발레 수업에 등록해 보았다. 발레복을 입은 딸아이의 모습은 천사 같았지만, 발레수업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기보다 나가자며 엄마에게 매달리고,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어떤 엄마가 구석에서 동생 기저귀를 갈고 있는 것까지 보고 나서, 유아 발레 수업의 로망도 무너졌다. 좀 더 커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거의 유일하게 시킨 것은 엄마아빠를 닮아 운동에 재주가 없는 큰 아이를 위해 2년 정도 아파트 상가에 있는 태권도 도장을 보낸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제법 잘 적응하고 있다. 사교육을 거의 하지 않은 유일한 단점이라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던 버릇이 들어, 학교의 규율과 숙제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큰 아이는 독창적인 생각과 말로 주변을 즐겁게 해주곤 하는데, 사교육을 적게 접하고 자란 것이 아이가 개성을 키울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이가 자신에 대해 언제나 긍정적이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도, 사교육을 접하지 않아 또래 친구들과 자신을 여러모로 비교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 둘째 역시 첫째의 교훈을 이어받아, 사교육 없는 유아기를 즐기고 있다.

주변에 아이가 좀 더 자란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도, 어릴 때 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그럴 시간에 좋은 책이나 읽어주라고 한다.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유아 사교육이 큰 의미가 없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아 사교육 시장은 줄어들 줄 모르며, 한 조사에 따르면 거의 90%에 육박하는 영유아가구가 사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핵가족화되었으나 노동강도는 매우 높은 사회에서 도와줄 사람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지친 엄마들이 숨통을 찾기 위한 탈출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날이 심해지는 경쟁 속에서 우리 아이가 혹시 뒤처질까 싶은 불안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유아정책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보니, 영유아기 사교육의 이용횟수가 높을수록 문제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고, 영유아기에 모두 사교육을 거의 하지 않은 아이들의 문제행동 수준이 사교육을 많이 한 아이들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고 한다. 영유아기 과도한 사교육이 아이의 정서, 사회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유아 사교육,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아닐까. 아이들의 본업은 놀이라는 것을 엄마도 사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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