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등록 : 2017.08.15 17:40

초록 폭포 여유로운 해변…또 하나의 쉼표 롬복

급부상한 인도네시아 여행지, 종교적 관용과 순수한 미소가 남아 있는 섬

등록 : 2017.08.15 17:40

롬복 남부 탄중안해변에서 여행객과 현지 아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발리가 청량음료라면 롬복은 생수라고나 할까요, 밋밋하고 조용한 곳이죠. 자극적이고 톡 쏘는 즐거움은 없지만 오래 머물며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매력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인도네시아 롬복에서 한인여행사를 운영하는 김현기 매니저의 자체 평가다.

미흡했다고 생각했는지 “몰디브의 바다, 보라카이의 흥겨움, 하와이의 절경을 각각 80%는 갖춘 곳”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발리로 대표되던 인도네시아 여행지에 올해부터 롬복이 급부상했다.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에 소개된 후, 한 호텔 예약 플랫폼에서 한국인의 롬복 숙소 검색량은 전년에 비해 550% 늘었다. 오래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또 하나의 쉼표’, 롬복의 모습을 전한다.

초록 융단처럼 청량한 미소, 린자니지질공원

그 좋다는 해변 대신 인도네시아관광청에서 잡은 첫 일정은 린자니 산자락의 폭포였다. 롬복은 제주도보다 2.5배 넓은 땅에 250만여 명이 거주하는 제법 큰 섬이다. 롬복의 지붕 린자니(Rinjani)산은 해발 3,726m로 트레킹 상품은 2박3일 여정이다. 대신 린자니 남서면 산자락의 2개 폭포를 돌아보는 코스는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린자니지질공원으로 가는 길에 본 풍경.

린자니산 베낭스토클 폭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이곳에서도 폭포 물맞이는 건강의 비결로 알려져 있다.

30m 높이에서 떨어지지만 물줄기가 부드러워 폭포 아래서 물맞이를 즐기는 여행객도 많다.

롬복의 최대 도시 마타람에서 린자니지질공원까지는 차로 약 1시간여 거리,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차량과 오토바이, 가끔씩 마차까지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실제 거리(약 40km)에 비해 많이 걸린다. 도로수준에 견주면 운전습관은 양호한 편이다. 추월할 땐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야 하지만, 과속을 하거나 무리하지 않고 경적도 거의 울리지 않는다. 느린 대신 모내기와 수확하는 모습이 공존하는 농촌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이 차창으로 다가섰다 물러난다. 슬쩍슬쩍 스치는 모습에 20~30년 전 한국의 시골 풍경이 겹친다.

공원입구에 도착하자 내내 맑았던 하늘에서 한 두 방울씩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폭포인 베낭스토클(Benang Setokel)까지는 약 1km, 짙푸른 숲으로 뒤덮인 어두컴컴한 산책로가 열대 우림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정글을 통과해 시야가 트이자 눈앞에 3줄기 하얀 물줄기가 초록 절벽에서 떨어진다. 베낭스토클은 한국어로 ‘실 뭉치’쯤으로 번역된다. 비단처럼 한 올 한 올 가는 물줄기가 합쳐져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는 모습이 유난히 희고 곱다. 그래서 30m 절벽에서 떨어지는데도 부담 없이 들어가 물맞이를 즐긴다.

베낭클람부 폭포의 비단 물줄기.

익살스런 표정으로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포즈를 취해 준 롬복의 여학생들.

두 번째 폭포인 베낭클람부(Benang Kelambu)까지는 약 20분을 더 걸어야 한다. 물소리 따라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비밀의 정원처럼 숨어 있던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 융단으로 덮인 편편한 절벽에 하얀 커튼을 드리운 듯, 떨어지던 물줄기가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3단 폭포다. ‘클람부’가 장식을 위해 드리운 천을 뜻한다니, 한국어로 옮기면 비단폭포인 셈이다. 이곳에서 폭포수를 맞거나 마시면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얘기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폭포 아래는 아예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작은 풀장도 만들어 놓았다.

롬복 소재 대학을 다닌다는 두 여학생에게 폭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자 양쪽에서 팔을 벌려 하트 모양을 그리며 흔쾌히 미소를 짓는다. 익살스런 표정과 함께 엄지와 검지를 겹친 손가락 하트까지 날린다.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며 얼마 전에는 ‘도깨비’의 주인공 공유가 롬복을 방문했다는 자랑도 잊지 않는다. 초록 폭포보다 청량한 그 미소가 오래 기억될 듯하다.

종교적 관용과 전통이 공존하는 문화

린자니에서 마타람으로 이동하는 중에 나르마다(Narmada) 힌두사원을 들렀다. 발리의 힌두 왕조가 롬복을 지배하던 18세기 초에 건설한 왕의 처소와 함께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지만, 이슬람교가 국교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규율이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여성들이 착용하는 히잡의 색상도 다양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될 정도다. 종교적 화합과 관용에서 모범 국가로 꼽힌다.

롬복 주민의 약 70%도 무슬림이다. 나르마다 사원에서도 히잡을 쓴 여성들이 산책을 하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2개의 큰 연못 주위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정원은 시원하면서도 한없이 평화롭다. 주변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코란 읊는 소리도 배경음악으로 흡수하는 듯하다.

나르마다 힌두사원의 평화로운 모습.

힌두사원에서도 주변의 모스크에서 울리는 경전 읽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 묘한 기분이 든다.

힌두사원 탑 위로 초저녁 달이 떠오른다. 사원 안은 들어갈 수 없다.

섬 남부의 사삭(Sasak) 민속마을은 롬복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사삭 민족의 옛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코코넛나무 기둥에 대나무로 서까래를 엮고, 볏짚으로 지붕을 얹은 전통가옥에 13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곳으로 정부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긴 여물통이 놓인 외양간에선 소들이 한가로이 되새김질하고, 아낙네들의 수다가 이어지는 마을 정자 주변에서 아이들과 닭들이 자연스럽게 뛰어 노는 모습은 한국인에게도 아련하고 정겨운 풍경이다.

롬복 남부 사삭 민속마을.

약속 대련이겠지만 공연 분위기는 실전 못지 않다.

어린 전사도 공연에 임할 땐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잊혀진 우리의 농촌 풍경처럼 정겨운 사삭 민속마을 풍경.

마을에선 관광객들을 위해 나무막대기와 가죽방패만 든, 가장 원시적인 복장의 옛 전사들이 무술공연을 펼친다. 약속된 대련이지만 막대기 휘두르는 소리가 살벌하다. 실제로 맨 살의 전사들 몸에 시뻘건 자국이 남기도 한다. 아직 미취학 아동일 듯한 어린 전사들의 대결도 포함돼 있다. 막대를 휘두를 땐 본능적으로 눈초리가 제법 매섭지만 대결이 끝나면 서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안아준다. 아이들은 공연이 끝나기 바쁘게 마당 한 구석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천진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어느 나라나 전통을 보존해 간다는 것은 쉽지 안은 일, 어린 전사들이 언제까지고 사삭의 혼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3색 해변의 색다른 매력, 그 한가함의 절정

롬복의 해변은 지역마다 특색이 뚜렷하다. 남부의 쿠타(Kuta) 해변은 산호해변이다. 언뜻 좁쌀 알갱이로 착각할 정도로 동글동글한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다. 산호가 자연방파제 역할을 해 수심이 허리춤에 미치지 못하는 앞바다는 개울물처럼 맑고 잔잔하다. 끝없이 흰 포말을 일으키는 바깥 바다는 서핑의 명소로 이름나 있다. 해변 주변은 세계적 체인 호텔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자본의 힘은 때로 정부를 능가한다. 롬복 전통가옥의 외관을 딴 한 호텔의 개별 숙소는 사삭 민속마을을 깔끔하게 옮겨놓은 모습이다.

그리스에서 온 가족 여행객이 쿠타 해변을 거닐고 있다.

한참을 나가도 수심이 허리춤에도 차지 않는다.

탄중안해변에서 다양한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객들.

탄중안해변 모래는 회 반죽처럼 부드럽다.

단단한 모래 위를 자전거로 질주하는 아이들.

인근 탄중안(Tanjung Aan) 해변의 모래는 회 반죽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다. 그래서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보다 해변을 거닐거나 모래장난을 하는 관광객이 더 많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탓에 인근 마을의 아이들이 자전거로 해변을 달리는 풍경도 흔하다. 초승달 모양으로 둥글게 형성된 2개의 해변이 붙는 모습이 푸근할 뿐만 아니라, 일몰과 일출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롬복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의 하나로 꼽힌다.

롬복 북서부 셍기기해변. 극성수기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한가롭다.

북서부의 셍기기(Sengigi)는 검은 모래 위주의 여러 개 해변이 길게 이어진 지역이다. 상대적으로 일찍 관광지로 개발돼 여행객들에겐 롬복의 허브이기도 하다. 길리(Gili) 3개 섬으로 당일 여행도 가능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패키지 프로그램도 이 지역에 숙소를 잡는다. 그럼에도 한국의 해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하다. 오전에 산책을 나갔던 해변에선 일가족 4명만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뒷걸음질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만 아늑한 해변에 울려 퍼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모래사장에 누우면 수평선 부근의 뭉게구름이 눈높이에 걸린다. 극성수기 8월초 해변의 모습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여행상품 홍보 사진에서나 흔한 그 풍경 속에서 여정의 쉼표를 찍는다.

롬복(인도네시아)=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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