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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부는 고르기 욕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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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부는 고르기 욕심을 버려라

입력
2015.12.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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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를 보면 심사위원과 시청자 투표가 우승자를 결정한다. 심사위원은 노래, 율동 등 다양한 코칭으로 경연자의 성장을 돕는다. 개발시대의 우리 기업도 이렇게 성장했다. 시청자 역할은 소비자가, 심사위원은 정부가 했다. 절정은 1970년대였다. 정부는 조선, 철강 등 중화학 산업을 선정하고 기업까지 지정했다. 논란은 있으나 이 결정은 우리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나 민간은 성장했고 시대가 달라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도 심사위원을 자처한다. 이러한 정부의 고르기 욕심은 부패와 담합을 키울 우려가 있다. 부패까진 아니어도 기업이 정부 눈치를 보는 관행을 만든다. 아무리 청렴한 정부라도 이젠 경제가 복잡해져 잘못된 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옳은 결정을 한다 해도 정부가 개입하면 패자의 승복을 얻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고르는 권한을 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기업과 대학의 생사를 결정하고 있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성동조선과 대우조선을 연명시킨 것이 그 예다. 기업 생사는 금융이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살려 줄 기업을 정하면서 낙하산 인사를 부수입으로 챙긴다. 기업이 생존하려면 대정부 로비가 최우선이라는 나쁜 교훈도 남긴다.

대학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지원자가 없으면 대학은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돈으로 대학을 연명시키면서 그 돈을 수단으로 정원 감축을 유도한다. 그러나 지원자가 적으면 정원은 의미가 없다. 대학의 연명을 위한 재정 지원과 정원 통제를 그만 두고 대학구조조정을 소비자 선택에 맡겨야 한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지방대학, 인문학 등 공공성에 대한 배려를 하면 된다.

정부는 지자체의 결정도 대신하고 있다. 포괄보조금을 주고 각자 필요한 곳에 쓰도록 하면 될 것을 정부는 각종 칸막이로 나누어 준다. 사업별로 예산이 남아도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고 정부에 반납해야 하니 지자체는 그 사업 예산을 낭비적으로 다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부처가 보조금 배분 권한을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 이런 낭비는 계속될 것 같다. 지방정부의 포퓰리즘이 걱정이라면 지방재정 평가를 강화하면 된다.

정부에 귀속될 수입을 민간기업에 특혜로 주는 사례도 많다. 최근 면세점 사업자를 관세청이 지정한 것이 그 예이다. 심사위가 평가하긴 했으나 선정은 결국 정부 몫이며 5년마다 재심사까지 한단다. 근본 해결책은 자격을 갖춘 기업에겐 면세점 사업을 자유화하는 것이다. 만약 면세점 과잉이 걱정이라면 사업권을 경쟁 입찰 붙여 기업이 누릴 특혜를 정부 수입으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해양수산부는 우수 업체에게 항만사용료를 감면해 준다. 공공요금을 산업이나 계층별로 할인해 주는 경우는 있어도 각 기업별로 내야 할 요금을 정부가 결정해 준다니 참 놀랍다. 항만사용료 역시 정부 결정이 아니라 경쟁 입찰 등 시장 원리에 따라 책정되어야 한다.

금융이 할 일을 정부가 대신하는 사례도 많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기 위해 나름의 평가 지표를 운영한다. 금융기관에 선정을 맡기고 이자율 차이만 보전해도 되는데, 굳이 공단이 기업을 고른다. 선정 과정에서 공단과 산업부는 큰 권한을 갖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 예산부터 재정 융자 사업을 이차보전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는데 공단 사업은 대부분 이를 피해 갔다.

중소기업청은 70개 히든 챔피언을 2017년까지 100개로 확대하기 위해 1,150개의 후보를 선정한단다. 아무나 지원하지 않고 될성부른 나무를 고른다는 뜻은 좋다. 그러나 그 선정을 정부가 아니라 금융에 맡기는 것은 어떨까? 금융은 담보만 볼 뿐 옥석 가릴 역량이 없다고? 책임과 동기를 부여하면 역량은 생긴다. 금융을 탓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고르기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시작이며 우리 경제가 사는 길이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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