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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맹견에 돌 던지는 사회, '푸들은 되고 진돗개는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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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맹견에 돌 던지는 사회, '푸들은 되고 진돗개는 안되고?'

입력
2017.09.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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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으로 분류되는 핏불은 사냥이나 투견 목적으로 사육되는 경우가 많다. 어웨어 제공
맹견으로 분류되는 핏불은 사냥이나 투견 목적으로 사육되는 경우가 많다. 어웨어 제공

‘맹견’이 화제다. 지난 8일 산책 중이던 부부가 사냥용으로 기르던 개 네 마리에 물린 사건이 발생하면서 맹견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이 확산되고 있다. 반려견 ‘밴조’를 데리고 나가는 산책길에서 평소에는 손을 내밀며 인사하던 동네 이웃이 목례만 하고 멀찍이 피해 가는 것을 보고 쓴 웃음이 나기도 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등 총 5종(혼종 포함)을 맹견으로 분류하고 입마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겼을 시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피해자가 큰 부상을 입은 경우에는 사실 그 부상 정도에 비해 미약한 처벌이다. 실제 이번에 사고를 낸 사냥개의 주인에게는 중과실 치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고 한다.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잇따르자 국회에서는 7월 말부터 맹견에 관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네 건이나 발의됐다. 법안을 발의한 장제원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돗개, 풍산개 등 "사람을 공격한 이력이 있는 종의 개는 맹견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외국에서는 특정 종 개의 사육을 금지한다며 우리나라의 관리 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개의 ‘종’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

동물보호법상 맹견으로 분류돼 있는 로트와일러. 픽사베이
동물보호법상 맹견으로 분류돼 있는 로트와일러. 픽사베이

사냥개, 사람과 친할 기회조차 없었다

영국과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하는 ‘특정견종에 대한 법률(Breed Specific Legislation·BSL)’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서구사회에서 타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와 미국수의사협회(AVMA) 등은 특정견종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특정 견종과 관련이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고 개의 성향은 유전자보다 사육환경과 자라면서 겪은 경험 등에 따라 형성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람을 무는 사고는 모든 종에게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종에 대한 규제보다는 동물 주인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두 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번에 부부를 물려 중상을 입힌 사고는 ‘반려견 사고’로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 그 개들은 반려 목적이 아닌 사냥을 목적으로 사육된 동물들이다. 겨울철 사냥기간 동안 사냥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길러지는 개들의 삶은 비참하다. 짧은 쇠사슬에 묶여 살면서 먹을 것도 충분히 먹지 못하고 공격성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불법투견에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멧돼지를 사냥하다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겨나가도 치료는커녕 주인이 대충 바늘로 꿰매기 일쑤다. 상품가치가 없어지면 식용견 농장으로 팔려간다. 사냥을 잘 하는 개는 계속해서 새끼를 낳는 번식용으로 사용한다.

사냥에 사용하기 위해 사육하면서 관리까지 부실하게 한 것은 목줄과 입마개 등 ‘펫티켓’을 지키지 않은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한 사냥개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사냥한 사람에게 '사냥개는 불법 밀렵도구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는 개를 사냥 목적으로 개에게 공격적 성향을 보이도록 기르게 용인한 것과 다름없다. 지난 7월, 의정부에서 70대 노인을 물어 숨지게 한 개도 멧돼지 사냥개였다. 또한 지난 5월 원주에서 주인을 물어 숨지게 한 개는 400마리를 기르는 대형 식용견 농장에서 길러지던 도사견이었다. 사냥개들은 사람과 친해질 방법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던 동물들인데, 역시 사람의 관리부실로 사살당하거나 안락사 대상이 되고 있다.

개를 통제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현실이 이런데도 ‘맹견’으로 분류되는 종을 확대하거나 개에게 입마개를 물리고 공원 등 공공장소 출입을 제한하자는 주장만 있을 뿐, 우리 사회에서 개가 어떤 환경에서 길러지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다. 사냥, 투견 등 특정 목적으로 개를 번식, 사육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는 법안도 발의되지 않았다. 심지어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법적 장치인 ‘동물보호법’의 명칭을 ‘동물관리법’으로 바꾸자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그렇지 않아도 미흡한 동물보호법인데, ‘통제’를 입법 목적으로 두자는 것은 자칫 우리나라 동물복지수준을 퇴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개에게 물리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개와 짧은 줄에 묶여 길러지는 개, 사람과 다른 동물과의 접촉 없이 사회화 훈련이 되지 않은 개가 공격성을 보일 확률이 더 크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미국수의사협회도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의 자격을 강화하고 중성화수술을 의무화하는 등 주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개를 짧은 줄에 묶어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나 지역자치단체도 증가하고 있다.

CDC도 개가 무는 사고는 지역사회를 토대로 한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문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제도 개선과 함께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시골처럼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고 길러지는 개들이 많은 지역사회일수록 올바른 개 사육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골개 1미터의 삶' 캠페인을 하다보면 불법투견과 사냥 목적으로 사육, 번식되는 핏불을 보게 된다. 현행법에는 사냥을 목적으로 한 사육을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어웨어 제공
'시골개 1미터의 삶' 캠페인을 하다보면 불법투견과 사냥 목적으로 사육, 번식되는 핏불을 보게 된다. 현행법에는 사냥을 목적으로 한 사육을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어웨어 제공

개의 성격은 사람 하기에 달려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도 주의해야 한다. 밥을 주고 잠 잘 곳을 제공하는 것이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아니다. 반려견은 크기와 상관없이 공공장소에서는 반드시 목줄을 착용해야 한다. 충분한 운동과 교감으로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유지하고, 문제행동을 보인다면 입마개뿐 아니라 원인을 파악해 교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 종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관리할 능력이 되지 않는 개를 기르는 것은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개를 기르지 않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는 모르는 개에게 다가가거나 만지지 않아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사냥개도, 맹견도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 동물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동물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동물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푸들은 키워도 되고 진돗개는 키우면 안 되는 사회가 아니라, 진돗개로 태어나도 훌륭한 반려견으로 살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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