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든 오른손, 왼손 모두 허우적
발끝으로 더듬… 빨간불에 건너기도
각종 소음 뒤섞여 불안감 더해
10초면 충분했을 거리 10분 걸려
휠체어도 고역… 오르막·내리막·계단
"이동권이야말로 인권의 기본" 절감
“한번 해 보지,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지난 15일 장애 체험을 하기 위해 서울 강북구 인수동 국립재활원을 찾았다. 시각장애 체험관에 가니 버스정류장과 인도, 도로, 횡단보도 등이 모형으로 재현돼 있었다. 눈을 가린 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인도를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돌아오는 체험이었다. ‘오른 쪽으로 돌아서 버스 타고, 내려서 왼쪽으로 걸어와서 길 건너면 되겠네’라며 동선도 눈으로 익혀뒀다.
하지만 안대를 끼고 눈을 감자 상황이 달라졌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살짝 어지러운 느낌이 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며 바닥을 아무리 짚어봐도 바닥이 평평한지, 앞에 장애물은 없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불안해서 좀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발 끝으로 땅을 더듬더듬 짚으면서 겨우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엉뚱한 곳에 가서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걸 막기 위해 국립재활원 직원들이 곳곳에 서서 박수를 쳐 방향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 소리에서 방향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박수소리와 지팡이가 바닥을 짚으며 내는 소리 등 주변에서 나는 모든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소리는 길을 찾는 중요한 단서였지만 사방에서 나는 여러 소음들과 섞이니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소음 때문에 정말 번화한 도로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외려 불안감만 커졌다.
결국 왼손도 앞으로 쭉 뻗었다. 오른손으로는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고 왼손은 왼손대로 허우적거리며 발끝으로 땅을 더듬더듬 짚다 보니 자연스레 엉덩이가 뒤로 쭉 빠지는 구부정한 자세가 됐다.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싶어 ‘여기는 모형 체험관’이라고 몇 번이나 머리로 되뇌어봤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게 어둠 속에서 걷기에 가장 안전한 자세였다. “장애인들이 왜 왼손을 들고 다니는 줄 이제 알겠죠?” 한 국립재활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왼 팔을 휘젓고 다니다 직원들의 몸을 건드리기도 여러 번.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지만, 사실은 손 끝에 사람이 닿을 때마다 반가웠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빨간 불인데도 허우적대며 길을 건너다 주의를 받고 다시 건넌 후에야 겨우 체험이 끝났다. 눈을 뜨고 걸었다면 10초면 충분했을 곳을, 벌벌 떨며 더듬거리느라 10분이나 걸렸다. 공포의 10분이었다.
휠체어 체험 역시 만만치 않았다. 휠체어 체험장은 오르막, 내리막, 울퉁불퉁한 돌 길 등 실제 휠체어를 타고 외출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길의 모양을 축소해 놓았다. 완만한 오르막길에서는 상체를 뒤로 뉘어야 무게 중심이 맞아 안전하게 오를 수 있고, 급경사를 오를 때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야 하는 등 상체를 사용하는 방법이 각기 달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 특히 계단을 만났을 때는 뒤에서 직원이 휠체어를 들어줬는데, 내가 볼 수 없는 뒤에서 누군가 내 몸을 들어올린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불편했다.
불과 20여분의 모형 시설 체험이었는데도 얼마나 불안에 떨며 긴장을 했는지, 다음날 일어나보니 양쪽 허벅지에는 알이 단단히 배 있었다. 장애인의 이동 문제는 워낙 과거부터 제기됐던 문제라 소홀히 여겼던 게 사실인데, 내 몸은 이동권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273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장애인 중 67.3%가 거의 매일 외출을 하고 있으며 이 중 39.8%가 교통수단 이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의 이유는 ‘버스나 택시가 불편해서’가 61%로 가장 많았고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 부족’(17.2%) ‘장애인콜택시 등 전용 교통수단 부족’(14.3%)이 뒤를 이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